[한경에세이] 기업은 현장이다

신동우 < 나노 회장 dwshin@nanoin.com >
2009년 창립 10년이 되는 해에 새 공장을 지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결정하지 못한 것은 미세먼지 원인 물질을 제거하는 핵심 소재를 제조하는 장비를 국산화할 것인가, 아니면 검증된 외국 장비를 사 올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전 8년간 두 차례 장비 국산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뒤였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원화가 약세여서 외산 장비 수입 가격은 국산 대비 세 배 이상으로 뛰었다. 국산 장비는 품질을 담보할 수 없었고, 외산 장비로는 제품 가격을 맞출 수 없었다.

운명을 같이하는, 신뢰하는 임원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한 번 더 장비 국산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마지막이다. 이번에 실패하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 외산 장비를 사 와서 제품을 만든다고 해도 결국 문을 닫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 배나 비싼 장비 투자로는 원가 경쟁력이 없을 뿐 아니라 외국 장비는 비싼 부품을 재고로 항상 안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대로 된 장비를 개발하는 것 외에는 살길이 없다. 회사의 운명을 맡긴다.”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의 비장함을 서로 느꼈다. 그길로 장비업체에 달려간 임원은 야전 침대를 깔고 현장에서 반년을 버텼다.같은 상황에서 명문대학 경영대학원(MBA) 교육을 받은 참모가 있었다면 다음과 같이 제안했을 것이다. “국산 장비를 개발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지난 8년간 장비 개발을 시도했으나 두 번 다 실패했습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공장 건물, 토지, 기타 설비 투자가 모두 물거품이 됩니다. 꼭 필요한 장비는 검증된 외산을 도입하고, 국산 장비는 시간을 두고 개발을 병행해 차후 성공 시 이를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만약 외산 장비를 먼저 도입하고 차선으로 국산 장비를 개발한다면, 그 장비는 결코 제대로 개발될 수 없을 것이다. 간절함의 차이가 현장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새 공장 준공식을 앞두고, 개발한 국산 장비의 시험 운전을 했다. 새로 개발한 장비는 기대 이상으로 완벽한 제품을 쏟아냈다. 장비 개발에 혼신을 다한 임원의 어깨를 한번 툭 친 게 전부였다.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는 이제 세계 1등 회사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 후 10년이 지난 작년 6월, 인도 최대 국영 발전설비회사에 기술을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인도 내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초미세먼지의 원인 물질을 제거하는 핵심 소재를 생산하는 첫 번째 공장을 짓는 데 우리의 제조 기술을 선택한 것이다. 긴 가방끈은 때로 혁신의 걸림돌이 된다. 기업은 발품을 먹고 크는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