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토지주들 "老鋪 보존하면 재개발 불가능…다 죽으란 말이냐"

을지로 일대 재개발 전격 중단
서울시 '을지로 재개발 계획 재검토' 거센 후폭풍

"재산권 침해·생존권 위협"
"수백년 내다봐야 할 도시계획, 시장 한마디에 호떡 뒤집듯 하나
빠른 시일내 손배소 진행할 것"

서울시, 재개발 왜 보류했나
을지면옥 등 생활유산 반영 못해
공구상가 밀집 수표정비구역도 보상대책 마련때까지 사업중단
서울시가 을지면옥 양미옥 등 세운3구역 노포의 보존을 결정하면서 3조원 규모의 세운상가 주변 재개발사업이 차질을 빚게 됐다. 을지면옥과 주변 노후 상가 모습. /신경훈 기자 hkshin@hankyung.com
서울시가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세운지구재정비사업에 제동을 건 것은 을지면옥과 양미옥 조선옥 안성집 등 노포 철거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공구상가와 노포를 보존해야 한다는 상인들의 주장에 동의한다”며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새로운 대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운상가 주변 재개발구역에선 철거가 진행 중인 곳과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곳도 있다. 서울시가 허가를 다 내준 뒤 뒤늦게 입장을 바꾼 모양새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서울시가 수백 년을 내다보고 설계하는 도시 계획을 시장 한마디에 호떡 뒤집 듯 뒤집었다”며 “이곳에서 사업을 주도한 시행사와 토지주는 죽으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운3·수표구역 재개발 ‘일시정지’23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을지로 세운상가 일대는 재개발사업인 세운재개발촉진지구와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이 중 세운3구역은 대지면적 3만6747㎡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8개 구역 중 가장 크다. 현재 3-1부터 3-10까지 10개 소구역으로 쪼개져 재개발사업을 하고 있다.

3구역 중 토지보상 및 입주자 이전 협의가 마무리된 3-1·4·5구역은 작년 12월부터 철거를 시작했다. 3-2·6·7구역은 2017년 4월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보상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이 구역은 2단계 철거지역으로 올 하반기부터 철거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제동을 걸면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서울시는 토지보상과 이주계획을 마치고 철거를 진행 중인 3-1, 3-4·5구역은 재개발을 그대로 추진하도록 했다. 하지만 노포들이 포함된 3-2·6·7구역과 3-3·8·9구역 통합 개발은 보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관할 구청과 협의해 사업시행인가를 최대한 늦출 방침이다.서울시는 공구상가가 밀집된 세운3구역 옆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도 기존 상인 이주보상 등 종합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사업 추진을 중단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 이 지역에 지하 5층~지상 25층, 연면적 11만7813㎡ 규모 대형 오피스빌딩 개발계획을 조건부로 통과시켰다. 시행사는 지난해 12월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했다. 신상철 중구 부구청장은 “이주대책과 보상금 지급 계획이 불분명하다”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사업시행인가를 보류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세운3구역과 수표구역의 사업비 규모가 2조5000억원에서 최대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을지면옥도 재개발 찬성”

2014년 서울시의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사업 계획’ 발표 이후 5년 동안 사업을 기다려온 영세 토지주들은 “서울시가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지주모임과 가족 등 관계자 150여 명은 21일에 이어 이날도 서울시청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어 박 시장을 비판했다. 구용모 세운3구역 지주공동사업추진위원회 사무장은 “을지면옥과 안성집 부지를 보존하면 사업성이 떨어진다. 재개발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며 “서울시가 정책을 뒤집으며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대형 로펌에 법률자문을 요청했다”며 “이른 시일 내에 서울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서울시는 이날 재개발 계획을 변경한 이유에 대해 “2014년 발표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사업 계획이 역사도심기본계획상 생활유산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세운3구역 내 생활유산으로 지정된 가게는 을지면옥 양미옥 조선옥 을지다방 등 4곳이다. 구 사무장은 “을지면옥은 보존을 원한 적이 없다”며 “사업 초기인 2007년부터 재개발을 주도했고 이전할 건물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당 2억원이라는 토지 보상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을지면옥 소유주가 재개발 반대로 돌아선 것인데, 서울시가 보존을 내세우며 갑자기 사업 전체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비판했다. 집회에 참가한 토지주는 “시민단체들의 입김에 시장이 휘둘리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생활유산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고 이어져 내려오는 시설, 기술, 업소 등이나 생활모습, 이야기 등 유무형 자산을 말한다. 서울시는 2015년 마련한 ‘역사도심기본계획’에서 처음으로 생활유산 개념을 도입했다. 보존을 법으로 의무화한 제도는 아니다.

최진석/이주현/구민기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