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남극부터 아프리카까지 25년 간의 '경험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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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7
경험 수집가의 여행‘여행’이라는 단어 때문에 《경험 수집가의 여행》을 집어 들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700쪽이 넘어 한 손으로 들기 어려울 정도로 두툼한 데다 사진 한 장 없이 글자만 빼곡하다. ‘7대륙 25년의 기록’이라는 부제의 무게만큼 진지한 책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임상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1980년대 말부터 25년간 그가 경험한 세계 곳곳의 현장을 책에 담았다. 특정한 주제를 정하기보다 음식과 예술, 정치와 사회, 인류학과 심리학을 오가며 사람들과 시대상을 그려냈다. 그런 측면에서 여행기라기보다 취재기에 가깝다. 캄보디아 내전에서 살아남은 이로부터 들은 이야기,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관저 초대, 배에 갇힌 채 빙산만 바라봐야 했던 남극까지를 책에 펼쳐놓는다. ‘경험 수집가’를 자처하는 그이기에 더 생생하다. 아프리카에서는 우울증 치료 의식을 체험하면서 온 몸에 피를 뒤집어쓰기도 했고 소련의 해체를 가져온 쿠데타의 한가운데서 바리케이드까지 진군해 온 탱크를 마주하기도 했다. 책은 연대기 순으로 서술해 해당 시기에 그곳에서 벌어진 정치적 변동과 경제적 상황, 문화의 변화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어쨌든 두께가 부담스럽다면 여행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먼저 파악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행은 ‘자신을 넓히는 연습인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알아보는 연습’이라고 생각하는 저자는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넓어질 수 있는지 자신의 글로 증명한다. 관광과 여행의 차이도 구분한다. ‘무리지어 다니며 어디를 가든 그곳을 달갑지 않게 보고 사사건건 제 나라와 비교하는 사람’은 관광객, ‘어떤 장소를 가만히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체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여행객이다. 여행자이고 싶어 매년 떠나는 우리가 사실 그저 관광만 계획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말한다. “어디를 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세상에는 다른 장소들이 있고, 그곳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는 사실만 깨달으면 된다.” (앤드루 솔로몬 지음,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760쪽, 2만50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