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대중의 정의감도 상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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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정의감에 대한 확신 지나친 사회재판을 하다 보면 시효가 만료됐거나 증거가 없어 법적으로 이기기 어려운 사건이 있다. 그러나 불리한 당사자는 억울함이 있어 재판까지 온 것이며, 유리한 당사자라도 승리를 확신하기는 어렵다. 조금씩 양보할 것을 권해 보기도 하는데 화해가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서로 자기가 승리할 것으로 생각해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사례도 있지만, 무엇이 정의로운지에 대해 생각의 차이가 너무 큰 경우가 많다. 분쟁 전 과정을 고려하면 결국 쌍방 모두의 손해로 귀결된다.
갈등과 분열 낳고 모두에게 손해로 귀결
적법절차 지키면서 경청하고 설득해야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다투고 있는 사건은 함께 겪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이렇게 큰 차이가 생길까. 가장 큰 이유는 사실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인간의 인식은 불완전하며 기억은 쉽게 왜곡되고 편집된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도 자기가 기억하는 사실은 상대방의 사실과 매우 다르다.사람에 따라 정의감에도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정의감에 대해서는 확신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좌절되면 참을 수 없이 분노한다. 수단이 다소 과격하거나 절차가 잘못됐더라도 자신이 믿는 정의를 자기 손으로 실현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내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정의에 대한 확신은 직관적 느낌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의감을 선험적으로 정당화되는 절대적이고 신성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직관적 정의감은 진화 과정에서 생성된 정신 기제에 가깝다.
프랜스 드 발과 사라 브로스넌은 서로 볼 수 있는 상태에 둔 원숭이 두 마리로 실험을 했다. 모두에게 오이를 줬을 때 아무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한 마리에게는 오이를 주고 다른 한 마리에게는 포도를 주자 오이를 받은 원숭이는 만족하지 못했고 실험자에게 오이를 집어던졌다.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오이라도 받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차별대우를 받은 원숭이는 오이를 거부했다.실험경제학이 고안한 최후통첩 게임에서는 일정한 돈을 두 명의 참여자에게 분배하도록 한다. 1번 참여자가 어떻게 분배할지 제안하면 2번 참여자는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다. 2번 참여자가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대로 분배되지만 2번 참여자가 거절하면 두 참여자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경제적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받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2번 참여자는 상당한 금액을 제안받지 않으면 한 푼도 받지 않는 편을 선택한다. 이것은 분배에 대해 사람이 느끼는 정의감 내지 명예감과 관련된다.
사람은 원숭이와 달리 더 많은 몫을 분배받은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상대의 억울함에 공감해 자기 몫을 나눠주기도 한다. 이런 인간의 공감 능력에 의존해 다른 사람의 처지를 경청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설득을 통해 서로 동의할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기본이 돼야 한다.
세 사람의 농부가 열심히 땀 흘려 각자 한몫씩 생산했다. 그중 두 사람은 봄이 오기 전에 자기 몫을 다 소비한 뒤 다른 한 사람이 남겨둔 몫을 셋이 나누자고 결의했다. 남겨둔 몫을 뺏긴 농부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두 사람에게는 사정이 있을 수 있고 정의감도 다를 수 있다. 이때는 세 사람 간에 설득과 공감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섣부르게 다수결에 의존하면 정의는 훼손된다.국민 감정이라고 일컬어지는 대중의 정의감도 시대와 준거집단에 따라 상대적이다. 그러나 국민주권주의하에서 대중은 주권자처럼 보이고 선거 결과를 좌우한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다. 언론 역시 대중의 편견과 확증 편향에 영합하는 것이 편하다. 왕이 주권자이던 시절 왕에게 아부하던 말을 국민주권주의의 용어로 옮긴다면 국민은 항상 옳다고 말하는 것이다. 곡학아세하는 기회주의자들은 대중을 오도하고 갈등을 부추기며 섣부른 다수결에 의존함으로써 다수의 독재를 통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각자의 정의감에 대한 지나친 확신은 심각한 갈등과 분열을 낳으며 관련자 모두의 손해로 귀결되기 쉽다. 자신의 입장이 정의롭더라도 끝까지 관철하지 말고 적법 절차를 지키며 상대방에게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