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세계 빈곤은 어쩔 수 없다?…무력감 탈피가 인류애 첫걸음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이자 최초 식량특별조사관이던 장 지글러는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를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을 해부한다. 충격적인 기아 실태와 그 배후를 아들과의 대화 형식으로 전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전작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똑같은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저자는 손녀 조라와의 문답식 대화를 통해 다국적기업이 벌이는 횡포, 소수 금융자본이 세계의 부를 차지하는 현실, 선진국에 진 빚 때문에 영원히 빈곤의 굴레에 갇힌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빈곤의 원인과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고찰한다.자본주의 아래 인류가 편안한 삶을 누리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책에 따르면 자본주의 예찬론자들은 분명 자본주의는 우리가 유전자나 바이러스를 연구해 대부분 질병에 맞서 싸우고 기후 변화를 이겨낼 수 있게 한 힘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종자를 개량해 시장이 요구하는 농산물을 생산할 수 없고,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교통수단을 개발할 수도 없었을 것이란 점도 분명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 같은 자본주의가 이 세계에 이른바 ‘식인 풍습’을 불러왔다고 일갈한다. 자본주의 생산방식 속에서 극히 적은 소수만 누리는 풍요로움은 제3세계 사람들의 고통과 빈곤을 자양분으로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그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고 우리는 흔히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에서 태어나며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서술한다. 단순히 가난한 나라의 참상을 드러내거나 몇몇 대기업의 횡포를 고발하기 위해 쓴 책은 아니다. 굶주린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다만 ‘나 하나로는 무력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라고 이야기한다. 냉엄한 자본주의 질서 속 불평등에 맞설 인류애를 어떻게 키워나갈지,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시공사, 200쪽, 1만30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