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본고장' 미국서 부는 만만찮은 사회주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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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 기자의 Global insight“부자들이 부담해야 할 정당한 몫의 세금을 내게 하겠다.” 미국 민주당 소속 20대 초선 하원의원의 대담한 주장이 미 정계와 경제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당내 경선에서 10선 현역 의원을 꺾으면서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민주당 의원이 주인공이다.
20代 의원 "최고세율 70%" 주장
민주 잠룡들 "대기업 규제 강화"
美 젊은층, 사회주의 선호 늘어
"反시장 정책 역효과 생각해야"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올해 29세의 히스패닉계 여성으로 미 의회 사상 최연소 하원 의원이다. 그는 얼마 전 방송 인터뷰에서 “연소득 1000만달러(약 112억원) 이상의 고소득자에게 60~70% 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최고 세율 37%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이다.
이에 대해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경제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끔찍한 아이디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민주당 분위기를 보면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 제안을 젊은 의원의 치기 어린 주장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대선 도전 의사를 밝힌 민주당 중진 정치인들이 내놓는 정책들도 ‘좌클릭’ 경향이 뚜렷하다. 유력 대선 후보로 꼽히는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매사추세츠주)은 24일(현지시간) 순자산 5000만달러 이상 부자에게 연간 2%의 세금을 부과하는 ‘대부호세(ultra millionaire tax)’ 정책을 발표했다. 10억달러가 넘는 자산에 대해선 세율을 3%로 높인다는 방침도 함께 내놨다.워런 의원은 애플 구글 등에 강력한 반독점법을 적용하는 등 대기업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8월 ‘책임 있는 자본주의법’을 발의했다. 연 매출 10억달러 이상인 기업을 ‘연방법인’으로 정하고 이사회 구성원의 40% 이상을 근로자들이 뽑도록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역시 민주당 소속으로 대선 도전을 선언한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캘리포니아주)은 고소득층에 대한 세액공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대형 금융회사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마련한 재원으로 중산층에 2조800억달러 규모의 세금 감면 혜택을 줄 방침이다.
무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주)이 제안한 전 국민 단일 건강보험 제도엔 워런 의원, 해리스 의원, 커스틴 질리브랜드 상원의원(뉴욕주), 줄리언 카스트로 전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등 민주당의 거의 모든 대선주자가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미국의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이 같은 급진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지니계수는 2016년 기준 0.391로 프랑스(0.291), 영국(0.351) 등에 비해 높은 편이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배가 불평등하다는 의미다.앞선 세대에 비해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진 젊은 세대의 불만이 커진 것도 이 같은 급진적인 정책 제안이 잇따르는 배경이다. Fed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24~32세 연령층의 주택 보유율은 지난 10년 사이 45%에서 36%로 하락했다.
하지만 좌클릭 정책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부유층의 세금 부담이 적다는 진단부터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국세청에 따르면 2015년 미국 상위 1% 고소득층이 전체 소득세의 39.0%를 냈다.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20.7%)보다 두 배가량 높은 비율로 고소득자들이 세금을 납부한 것이다. 건강보험 개편엔 앞으로 10년간 33조달러의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최근 미국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만만치 않게 높아지고 있다. 젊은 세대에서 특히 그렇다. 시카고대가 지난해 18~34세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5%가 사회주의에 우호적이라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61%, 공화당 지지자의 25%가 사회주의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자본주의 본고장 미국에서 부는 사회주의 바람은 흥미로운 한편으로 우려스럽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한국에서도 양극화 해소를 위해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와 대기업 규제 등이 종종 거론된다.
이런 정책이 의도한 효과를 낸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못한 사례가 많다. 스티브 채프먼 시카고트리뷴 칼럼니스트는 “정부의 학비 보조금은 대학 입학 수요를 늘려 오히려 대학 등록금을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았고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는 의료 서비스 수요를 확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을 거스르는 정책은 역효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