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 겪는 '방위비 협상'…韓·美, 총액형→소요형 전환해 출구 찾나

'총액 1조원 이상' 수용하고 분담금 방식 변경여부 주목

외교부, 분담금 협상과정 공개
美 '유효기간 10년·10억弗 마지노선'
제시하다 지난달 돌연 '1년' 선회…연간 상승률도 '7% 고정' 요구

일본 분담금 방식으로 변경?
정부, 美공세에 방식 변경 검토…금액 안줄어도 투명성 제고
총액에서 일부 양보하고 유효기간 등 얻어내는 타협 가능성
한·미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방식을 총액형에서 소요형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요형은 주한미군이 우리 정부와 협의해 사용처를 정하고, 이에 필요한 금액만 정부가 대는 방식이다. 현재 일본이 채택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주한미군 사령관의 재량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소요형으로의 전환을 줄곧 거부해왔다. 전문가들은 미측이 분담금 방식 변경을 수용하면 우리 정부는 올해 적용될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에서 총액을 높여주는 식으로 타협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막판 진통 겪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외교부는 지난해 3~12월 총 열 차례에 걸쳐 이뤄진 SMA 협상 과정을 25일 공개했다. 그간 외교부는 한·미관계의 민감성을 고려해 구체적인 협상 내용을 비공개를 전제로 기자단에 설명했다. 하지만 미측의 요구 사항이 여러 경로를 통해 노출된 데다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공개하기로 했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방위비 분담금은 미국이 동맹국들에 요구하는 일종의 ‘책임 분담금’이다. ‘세계 경찰’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은 공동방위 개념에 입각해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에 주둔 미군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요청하고 있다. 주한미군에 관한 우리 정부 분담금은 비인적주둔경비(NPSC)로만 쓰인다. 주한미군을 위해 고용된 한국인 인건비, 미군 주둔에 따른 비전투시설이나 한·미 연합 방위력 향상을 위한 시설 건설, 미군 물자 수송 등에만 사용된다. 미군 봉급엔 쓰이지 않는다. 지난해 한국이 분담한 금액은 9602억원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미국과 5년 단위로 협정을 맺고, 총액지급 방식으로 분담금을 제공했다. 협상이 없는 해엔 물가상승률(4% 상한선)을 반영해 총액 상승률이 결정됐다. 상황이 바뀐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우리가 불이익을 보면서 부자 나라들에 보조금을 지급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미국은 더 이상 ‘호구(sucker)’가 되지 않겠다면서 인상을 압박해왔다.청와대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12억달러(약 1조3566억원)를 요구했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트럼프의 새로운 동맹국 전략이 관건

외교부에 따르면 미국 태도가 급변한 것은 지난달 중순 마지막 10차 협상 때였다. 미측은 12억달러(연간) 분담을 요구하며 10억달러(약 1조1305억원)를 사실상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다. 1조원 수준에서 합의가 임박하던 차에 미 협상단이 태도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연간 상승률도 ‘7% 고정’으로 요구하고 있다.10차 협상에서 미측은 협정의 유효기간도 1년으로 변경했다. 협상 초기만 해도 미국은 유효기간 10년을 요구했다. 해외파병 미군의 주둔비용을 주둔국과 어떻게 분담할지에 대한 원칙을 전면 재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 방위비 분담 기준을 올해 마련한 뒤 한국, 일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과 재협상에 나설 전략인 것으로 해석된다.

미측이 총액과 유효기간에서 공세로 나오면서 우리 협상단은 분담금 방식 변경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주한미군 분담금은 금액을 합의해놓고 어떤 사업에 쓸지 정하는 총액형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총액을 정하지 않고 사업을 선정해 심사하는 소요형을 택하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분담금 사용처에 대한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다만 소요형으로 한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분담해야 할 금액이 줄어든다는 보장은 없다. 만일 한·미가 분담금 방식 변경에 합의하더라도 당장 올해부터 적용되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은 한·미 양국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이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고위급 회담을 통해 타결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교 당국자는 “미국은 총액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총액에서 일부 양보하고, 유효기간과 방위비 분담금 방식 변경을 얻어내면 국회 비준 통과와 관련해 협상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부교수는 “일본의 지난해 방위백서를 토대로 한국과 비슷한 분야의 분담액을 비교하면 일본은 3884억엔(약 3조9669억여원)으로 한국에 비해 약 4.2배를 분담한다”며 “한국은 주둔 미군 경비의 50% 정도, 일본은 75% 정도를 부담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라고 설명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