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파커 스미스 "주위 반대 무릅쓰고 오르간 전향…장엄함과 힘, 아름다움에 반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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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롯데콘서트홀 무대 서는 오르가니스트 제인파커 스미스“제가 오르간계 ‘마르타 아르헤리치’라고요? 너무 기쁜 칭찬이에요. 그는 완벽에 가까운 뛰어난 기교로 제게 큰 음악적 영감을 준 사람입니다.”
수지오페라단 창단 10주년 기념 신년음악회 무대에 서기 위해 내한한 오르가니스트 제인파커 스미스(68)는 27일 자신에게 붙여진 음악계 별명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마르타 아르헤리치(77)는 제네바 국제콩쿠르 우승은 물론 쇼팽 국제콩쿠르 우승에 이어 미국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솔로연주상을 거머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다. 그는 “아르헤리치는 악보를 넘어 작곡가의 생각을 해석해 관객에게 표현했다”며 “내 공연을 보는 관객도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그의 방한은 2004년 5월 오르가니스트 윤양희 총신대 교수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했던 듀오 연주 이후 15년 만이다.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29일 열리는 이번 신년음악회 무대에서 그는 오프닝곡으로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를 독주한다. 이어 2부에선 파이프오르간과 오케스트라 합주로 유명한 마스카니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을 코리아쿱 오케스트라와 합주한다. 오페라단과의 협주는 이번이 첫 도전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다른 연주자들과 협연하는 것을 즐겼고, 무엇보다 오르간과 금관악기 조합을 좋아한다”며 “그동안 솔로 연주가 외롭다고 느꼈는데 이런 기회를 얻게 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17세까지만 해도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다. 런던 왕립 예술원에 입학해 피아노는 물론 첼로와 하프시코드까지 공부했다. 오르간으로 전향한 것은 열아홉 살이 되던 해다. 그는 “대학 콘서트홀을 지나다 우연히 오르간 연주를 듣게 됐다”며 “처음 듣는 게 아닌데도 무슨 이유에선지 오르간의 장엄함과 힘, 그리고 아름다움에 격한 감격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오르간으로의 전향에 대한 주위 반대는 심했다. 그를 지도한 피아노 교수님은 ‘오르간이 피아노 테크닉을 망가뜨린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심지어 그를 더 이상 지도하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를 피아니스트로 만들려고 했던 아버지도 노발대발했다. 스미스는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오히려 피아노란 배경과 바탕이 있다는 게 더 큰 이점이 됐다”며 “쇼팽과 리스트, 드뷔시 명곡들을 연주하며 테크닉을 키웠고 음악적 난제들을 풀어가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스무 살 때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성공적인 런던 데뷔를 마친 그는 이후 런던 필하모닉,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무대에서 세계적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을 비롯해 칼 데이비스, 세르주 보도 등과 함께 연주하며 시대를 선도하는 오르가니스트로 살아왔다.
50년간 연주해 온 오르간은 그에게 어떤 존재일까. 스미스는 “오르간이야말로 거의 들리지 않는 속삭임부터 웅장함까지 다양한 강도를 가진 세심하고 복잡한 악기”라며 “마치 화가의 팔레트를 채우는 무수히 많고 다양한 물감처럼 많은 소리가 사이사이를 메운다는 점이 나를 언제나 매료시킨다”고 말했다.
스미스는 이번 공연 이후 올 12월 다시 방한해 롯데콘서트홀이 주관하는 오르간시리즈에서 여성 오르가니스트로는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테마곡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그는 “그동안 남성 연주자들이 주류였지만 이젠 여성 오르가니스트들도 빛을 발하고 있다”며 “성별보다는 좋은 연주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