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前 외교부 장관 "北, 핵보유국 포기 안할 것…비핵화 협상, 모래위의 城 쌓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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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인터뷰서울 남산 자락에 있는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70·사진)의 ‘서재’는 세상을 관조하기에 안성맞춤인 듯 보였다. 그 역시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할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송 전 장관은 “가슴이 답답하다.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화되고 국가안보의 미래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3시간가량 한 인터뷰에서 송 전 장관은 작심한 듯 “핵을 개발하던 북한과 이미 핵을 보유한 북한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미·북 2차 정상회담에 대해선 “비핵화의 정의를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다”고 경고했다. 정부를 향해서도 날을 세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로 한 손에 핵을 쥔 북한과 손을 잡고 들어가면서 우리는 뭘 쥐고 있나요?”
노무현 정부서 외교·안보정책 이끌었던 송민순 前 외교부 장관
2차 미·북 정상회담서 영변 핵폐기와 사찰까지 가야
종전선언은 필연적으로 주한미군 철수와 연결될 것
우리는 별개라지만 김정은 입으로 말 한 적 없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협상, 금액 싸움으로 가면 실패
트럼프에 명분주고 실리 얻는 '소요형'으로 전환해야
외교부 사기 너무 떨어져…이대론 외교전 이기기 어려워
▶곧 두 번째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것 같습니다.
“개최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됩니다. 먼저 한반도 비핵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협상 테이블에서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괌, 오키나와 등에 있는) 핵우산 철거를 말할 수도 있고, 한반도에 핵을 운반할 전략자산 전개를 금지할 수도 있으니까요.”
▶정치적 종전선언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로 들립니다.“생각해보십시오.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문구를 작성해야겠죠. 정전 상태이던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났다고 넣어야 할 겁니다. 필연적으로 주한미군 철수와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이 끝났는데 왜 미군이 있어야 하냐는 얘기가 반드시 나올 겁니다.”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와 연결시키지 않겠다고 했다는데요.
“김정은 입으로 한 적이 있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그렇게 들었다고 말한 것이죠. 정치적 종전선언이란 말은 좋게 보면 핵협상을 시작하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볼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마중물이 우물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5년짜리 단임 정부가 당장 실행에 옮기기엔 여러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종전선언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협정을 위한 개시를 선언할 수는 있겠죠.”▶북한의 비핵화 의지도 재고해봐야 할까요.
“북한과 협상할 땐 늘 그들의 화법에 유념해야 합니다. 항상 조건을 답니다. 북한의 문장은 단문이 없어요. 복문입니다. 체제보장을 해주면 핵을 포기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생각을 잘 해봐야 합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냐고 물을 게 아니라 북이 원하는 체제보장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냐를 스스로 판단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식의 체제보장을 원한다고 봅니까.“우선 정치적으론 김씨 일가의 세습을 인정해야 합니다. 군사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와 핵우산 철거를 의미할 것이고요. 경제적 체제보장이란 북한의 경제가 남한 수준이 될 수 있을 정도의 환경 조성을 요구합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겁니다. 세상 누구도 잘 먹느냐, 못 먹느냐의 문제를 자신의 목숨과 관련된 일과 바꾸진 않습니다. 북한은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고착되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적어도 전쟁 공포에선 벗어났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건 문재인 정부의 분명한 공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만 이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이 불을 껐다고 자부하는 걸 어느 정도까지 신뢰해야 할지는 의문입니다. 2차 미·북 정상회담 준비에서부터 차근차근 비핵화 협상을 해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과 북한이 어떤 행동 조치들을 주고받을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벽돌을 쌓듯이 마련해놔야 합니다.”
▶현재 미·북의 협상 쟁점은 무엇입니까.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지난번 싱가포르 회담처럼 맹탕으로 진행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일부에서는 핵동결 대 제재완화를 얘기하는데,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하려면 영변 핵시설 폐기 합의까지는 나아가야 할 겁니다. 북한은 영변 폐쇄 과정을 잘게 쪼개 세분화하려 할 것이고, 미국은 통째로 신고하고 검증 절차를 거치라고 요구하겠죠.”
▶우리 정부의 역할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처음에 중재자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건 말이 안 됩니다. 북한 비핵화는 우리 문제입니다. 우리가 당사자라는 얘기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중재를 하는 게 아니라 대화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해야겠죠. 남북한 관계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게 맞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미국이 걱정하는 건 남북이 합의해놓고 미국에 수용하라고 하는 모양새일 겁니다.”
▶개성공단 재개 등의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말한 조건 없는 재개는 과거에 하던 대로 하자는 얘기입니다. 현금이 들어가는 식으론 안 될 겁니다. 식량이나 의약품 생필품 등의 현물로 대납하는 건 가능하겠죠. 대북제재 이행에 중요한 건 취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법에 구체적으로 금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해도 된다는 식의 생각은 법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국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고 봅니까.
“중국의 본격적인 참여 없이는 북핵 문제는 실질적으로 풀기 어렵습니다. 근본적으로 북한은 중국이란 뒷배가 있었기에 핵위협을 할 수 있었다고 봐야 해요. 북한이 남태평양의 외딴섬에 있는 국가였다면 가당키나 했겠습니까? 물론 중국도 북핵에 대해선 불용 원칙을 유지할 겁니다. 중요한 건 중국이 핵무기를 가진 북한의 위험과 북한 체제의 붕괴가 가져올 위험의 경중을 따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중국은 북한을 살리기 위해 미국에 북한을 좀 도와달라고 하는 겁니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에 진통이 많습니다.
“이 얘기를 하려면 우선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이 왜 SMA(special measures agreement·특별조치합의)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제가 외교부 안보과장 시절에 SMA의 기본틀을 만들었어요. 원래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조항엔 한국 정부의 부담 의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88올림픽 전후로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지니까 한국 정부의 분담금 얘기가 나온 겁니다. 일종의 예외조항인 특별조치가 필요했던 것이죠.”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다고 봅니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협상을 통해 ‘내가 앞으로 주한미군 주둔비 100%를 받기로 했다’는 말을 미 국민과 의회에 하고 싶을 겁니다. 이게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습니다. 총액을 지급하고 미군이 알아서 쓰는 총액형이 아니라 미군이 실제 필요한 인력 물자 서비스를 현물로 지급하는 소요형으로 바꾸면 됩니다. 분담금 중 가장 크게 들어가는 게 시설 건설인데 이미 평택 미군기지 이전으로 군사건설비가 앞으로 거의 안 들어요.”
▶원하는 대로 주라는 말도 있는데요.
“그건 말이 안 됩니다. 나라 자존심도 버리라는 겁니까. 제가 SMA 협상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군에 줄 분담금을 늘리면 철책선에서 고생하는 국군에 들어갈 돈을 빼야 한다고요. 무조건 미국이 원하는 대로 줄 거면 왜 협상을 하나요. 중요한 건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퍼센티지(%)를 충족시키는 것이지, 빌리언이냐 밀리언이냐 총액 단위 갖고 싸우면 안 된다는 겁니다. 물론 소요형으로의 전환은 대통령의 큰 결단이 필요합니다.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들의 지위 문제도 있으니까요. 체통과 실속을 모두 챙기는 협상을 위해선 이제 협상틀을 바꿀 때가 됐습니다.”
▶외교부가 청와대에 휘둘린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외교부에 33년간 몸담았는데 참담한 마음입니다. 청와대는 방향타를 잡는 곳이지, 실제 엔진 역할을 하는 곳이어서는 안 돼요. 처음에 청와대 주도로 뭔가를 할 수는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외교는 정해진 공식에 따라서 하는 게 아니라 변하는 날씨에 맞춰서 대응하는 원예사 같은 일입니다. 지금처럼 관료들의 사기를 떨어뜨려놔서는 북핵, 한·일 간 과거사 전쟁과 같은 어려운 외교에서 창의적으로 대응할 동기가 안 생길 겁니다. 사기가 떨어진 군대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송민순 前 외교부 장관은…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6자회담 수석대표, 외교통상부 수장을 지낸 대표적 북핵 전문가다. 2005년 제4차 6자회담에서 수석대표를 맡아 9·19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이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으로 발탁됐다.
송 전 장관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과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도 맡아 미국과 담판을 벌였다. 뛰어난 협상전략과 상대를 밀어붙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와 함께 군인과 같다는 뜻에서 ‘커널(대령) 송’으로 불렸다.
외교관으로는 드물게 국익과 주체성을 앞세운 소신발언으로도 유명하다. 2016년 발간한 회고록에서는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정부가 북한에 의견을 물어봤다고 언급,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송 전 장관을 공무상 비밀 누설 등 혐의로 고발했으나, 지난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약력△1948년 경남 진양 출생
△마산고 졸업
△서울대 독문학과 졸업
△외교통상부 기획조정실장·차관보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외교통상부 장관
△제18대 국회의원
△제5, 6대 북한대학원대 총장
정리=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