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판 CES' 급조와 기업 강제동원 논란, 진상 밝혀야

내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한국판 CES’를 놓고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 주도로 예정에 없던 행사를 10여 일 만에 급조하는 과정이 시대착오적 관치 행정의 전형이자 부활이라는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 등에 급박하게 일정을 통보하면서 알려진 이번 행사를 둘러싼 논란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름 전 열린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 ‘CES 2019’에 출품된 한국 기업들의 제품을 홍보하고, 혁신성장 공감대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업계는 부실 행사로 이미지 추락마저 걱정해야 될 판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밀어붙이는 행태에 “솔직히 많이 놀랐다”는 반응이 다수다.기업들은 ‘CES 2019’가 끝난 이달 중순 “청와대 행사이니 참여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하소연한다. 청와대가 “기업들 건의로 시작됐다”고 설명했지만 면피성이라는 논란만 키우고 말았다. “미국 CES 때 기업들 사이에서 한국에서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둘러댄 산업부 해명은 더 당황스럽다. 행사를 주관하는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측도 “기업으로부터 해보자는 건의를 받지는 않았다”며 말꼬리를 흐리는 판에 어설픈 대처로 불신을 자초한 꼴이다. 그런 건의가 있었더라도, 알찬 행사를 위해 최소 몇 개월은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아는 주무부처가 중재 역할은커녕 대놓고 기업들을 압박한 것은 책임 방기일 뿐이다.

이런저런 잡음을 다 떠나, 국내에는 이미 ‘한국판 CES’로 불릴 만한 행사가 매년 열린다. 올해 50주년인 한국전자전(KES)이 있고, 해외에서도 참여하는 ‘월드IT쇼’도 10여 년째다. ‘소득주도 성장’의 비난에 직면한 정부가 부랴부랴 보완 정책인 ‘혁신성장’을 띄우려고 행사를 급조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혹시라도 이런 상황 인식과 실력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라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결과적으로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경제와 기업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마디 지시로 무엇이든 뚝딱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은 거대한 착각을 넘어, 시장을 교란시키는 권력의 치명적 자만이요 ‘갑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잖아도 ‘골방 탁상에서 경제를 주무른다’는 비판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좌파이념 실험을 고집하는 정책 탓에 경제가 급속히 활력을 잃고 있다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집권 3년차’에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증에 기반한 무리수 남발은 경제에 더 큰 주름을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