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 한국 무시전략 구사한 아베, 시정연설서 한국 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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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 한국 무시전략 구사한 아베, 시정연설서 한국 홀대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과 자위대 초계기의 위협비행 등으로 잇따라 한국과 대립각을 세웠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8일 일본 의회 시정연설에서 의도적으로 ‘한국 무시전략’을 구사했다. 200자 원고지 64매 분량(1만2800자), 52분간 진행된 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대(對)북한 전략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단 한번 ‘한국’을 부수적으로 언급하는데 그쳤다. 전통적인 동맹관계인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강조하고 중국·북한에 유화적인 자세를 내비쳤을 뿐 아니라 러시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까지 별도 항목을 만들어 언급한 것을 고려할 때 노골적으로 한국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다.
집권 후 가장 긴 시정연설서 ‘한국’을 단 한번 부수적으로 언급
향후 대한국 강경기조 유지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여
‘단 한번’ 언급된 한국아베 총리는 이날 시정연설에서 사실상 한국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외교적 입지를 부각시키겠다’는 항목에서 “북한과는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목표로 한다”며 “이를 위해 미국과 한국을 필두로 국제사회와 긴밀이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연설에서 유일하게 한국이 언급된 부분이다.
아베 총리는 미국에 대해서는 ‘미·일 동맹은 일본 외교와 안전보장의 기축(基軸)’이라고 치켜세웠고, 중국을 지목해선 “지난 가을 방중을 계기로 중·일 관계가 완전히 정상궤도에 올랐다”고 자평했다. 러시아에 대해선 “상호 신뢰와 우정을 다지고 북방영토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이 틀을 마련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언급은 물론 중동 국가들과의 적극적인 외교,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원조 방침까지 언급했다.하지만 2007년 1차 아베 정권을 포함해 집권기간 중 가장 긴 시정연설에서 이웃 국가인 한국에 대한 언급이 사실상 사라졌다. 아베 총리는 2017년까지 매년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고 표현해왔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위안부 합의 파기’문제가 본격 거론되면서 부터다. 지난해 시정연설에선 한국에 대해 관례적으로 붙던 우호적인 표현이 모두 삭제됐다.
이처럼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한 ‘백안시’전략을 들고 나온 것은 과거사와 국방 분야에서 양국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한국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유지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란 시각이 많다. 일본내 여론을 고려해 한국에 대해 형식적으로나마 사용했던 우호적 표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란 설명이다.
이와 관련,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5~2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조사 대상 일본인의 62%가 ‘한·일간 초계기 및 레이더 분쟁’에서 일본 정부에게 ‘더 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시각을 지닌 것으로 드러났다. ‘관망해야 한다’는 24%였고 ‘한국 측 주장을 경청해야 한다’는 입장은 7%에 불과했다. ‘초계기 분쟁’을 계기로 올 1월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도 53%로 전월대비 6%포인트 상승했다.북핵해결에 ‘재팬 패싱’은 없다
한국에 대한 무시와 대조적으로 아베 총리는 북한에 대해선 거리를 좁히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가 공식적으로 언급됐고, 북·일 정상회담 의사도 거론됐다.
아베 총리는 “핵·미사일 문제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호 불신의 껍데기를 깰 것”이라며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마주보며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단성 있게 행동하겠다”고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을 지향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시정연설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이라며 “북한의 정책을 바꾸기 위해 어떤 도발에도 굴복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것과는 입장이 극적으로 바뀐 셈이다.북한에 대한 아베 총리의 태도 전환은 지난해 미·북 정상회담 개최에 이어 올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추진되는 등 미국과 북한간 협상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국제정세를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재팬 패싱(일본 소외)’이 지속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시각도 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