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달갑지 않은 '稅收 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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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이어지는 세수 초과지난주 홈택스(국세청 납세자동화시스템)에서 필요한 자료를 내려받아 연말정산 신고를 했다. 지난해 필자의 경제활동 내역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돼 있어 몇 번의 클릭만으로 끝낼 수 있었다. 매년 해온 일이지만 올해는 “더 편리해졌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모든 거래가 전자화되면서 국세청이 납세자 자신보다 거래를 더 잘 알고, 관련 정보를 축적하고 있기에 가능해진 일일 것이다.
경기침체 경고음 큰 상황이라 문제
세수증대보다 중요한 건 민간부문 활력 끌어올리는 일
재정지출 늘리기보다 세부담 낮춰, 가계소비·기업투자 여력 높여야"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
지난해 한국은행이 3.0%를 예상했던 실질경제성장률이 2.7%에 그쳐 경제가 예상보다 나빠졌는데도 불구하고 국세수입은 줄기는커녕 더 늘어났다. 이런 초과세수 현상은 작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2015년 이후 4년째 지속(2015년 2조2000억원, 2016년 9조8000억원, 2017년 14조3000억원, 2018년 25조원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1월 국세수입은 총 279조9000억원으로 이미 지난 한 해 국세수입 예상치보다 11조8000억원 초과했고, 전년 동기보다는 28조원 더 걷었다. 예상치를 초과한 세목은 법인세, 부가가치세, 소득세 순인데 각각 11조4000억원, 9조2000억원, 3조1000억원을 11월까지 더 거뒀다. 12월 한 달 세수입을 합산하지 않았는데도 법인세는 10.1%, 소득세는 8.4%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일부 언론의 주장처럼 정부가 세수추계를 부정확하게 해 ‘세계잉여금’을 늘림으로써 국회 동의가 없어도 되는 재정지출 여유분을 의도적으로 늘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세계잉여금은 지방교부금 정산, 국가부채 상환, 추가경정예산 편성용으로 쓰게 돼 있는데 정부가 적법하게 처리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2~2014년 3년 연속 세입결손을 겪고 보수적으로 세수추계를 해왔다고 해명하고 있다. 작년의 초과세수는 부동산 시장이 활황이었던 데다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을 각각 25%, 42%로 인상한 효과가 작용했을 것이다.
문제는 글로벌 경제가 성장정체 위험에 빠진 상황에서 한국 경제도 고용, 소비, 투자 등 곳곳에서 경고음이 요란한데 기업과 가계로부터 세금을 더 거두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금리가 상승하고 부채가 느는 상황에서 세금 부담이 커지면 가계는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4분기 민간소비가 반짝 늘었다고 하지만 연간 가처분소득 대비 민간소비는 5년 연속 하락했다. 가계부채 수준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면서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의 가처분소득도 줄어들었는데 세금은 더 내야 했다. 또 지난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60%에 해당하는 국가가 법인세율을 낮출 정도로 전 세계적인 법인세 인하 경쟁이 한창인데 한국은 법인세율을 실질적으로 올렸고 이에 따라 법인세수도 늘었다.세수 증대보다 시급한 것은 민간부문의 경제활력을 제고하는 일이다. 재정지출을 통하는 것보다 세금 부담을 낮춰 가계소비와 기업투자 여력을 늘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와 재정건전성을 위해서 가야 할 길이다.
매년 달라지는 세법에 맞춰 연말정산을 하면서 정보 축적에서 국세청과 납세자 사이의 비대칭성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2015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초과세수에는 국세청의 정보기술 활용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세제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고 기술 진전에 힘입은 과세당국의 정보 축적은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반면 일반 납세자 입장에서 발전하는 거래 방식과 이에 대응한 세법 변화를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소득주도성장으로 경기를 살려보겠다는 정부가 경기상황과는 거꾸로 가면서, 개인과 기업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한 결과를 초래한 배경을 생각해 봐야 한다.
미국이 역사상 가장 긴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국민의 불편을 초래했는데 이런 심각한 재정준칙이 동원된 배경에는 과도한 수준의 국가부채가 있다. 재정압박에 처한 현대국가의 정당성은 한정된 자원의 지속가능한 사용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수풍년 시대에 연말정산을 하면서 납세자로서 재정건전성과 더불어 납세정보 축적과 활용의 비대칭성에 대해 정부도 같이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