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카피캣' 넘친다지만…VC 심사역까지 베끼기 창업
입력
수정
지면A16
억울한 전기스쿠터 공유社 올룰로“황당했어요. 벤처캐피털(VC) 심사역이 사업을 베낄 줄은….”
"자금 유치하려 투자社 방문
심사역이 핵심 자료·데이터 요구…똑같은 아이템으로 경쟁사 됐다"
심사역 "사업모델 참고만 했다"
특허청, 6월 부정경쟁방지법 도입
"안전장치는 기밀유지협약…스타트업 스스로 법률 숙지해야"
전기스쿠터 공유업체 올룰로의 최영우 대표가 지난주 기자를 만나 풀어놓은 하소연이다.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찾아간 VC 심사역이 자신의 사업모델을 따라해 비슷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설립했기 때문이다. VC가 심사역 지위를 활용해 ‘갑질’하는 바람에 회사 기밀 자료까지 넘겨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 심사역은 사업모델을 베낀 것이 아니라 참고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VC 심사역이 카피캣 창업
최 대표는 지난해 11월 투자금을 유치하려고 소프트뱅크벤처스(일본 소프트뱅크의 투자 전문 한국 자회사) 투자 심사역 A씨를 만났다. 다른 스타트업처럼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핵심 사업 자료와 데이터를 공개했다.
최 대표는 A씨가 자기 몰래 회사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만나 회사의 사업 원본 데이터까지 보여달라고 요구했고 마지못해 데이터를 정비해 넘겼다고 말했다. 사업하느라 바쁘니 A씨가 직접 데이터 원본을 검토하겠다는 얘기였다.다만 최 대표는 기밀유지협약(NDA)은 맺지 않았다. NDA를 맺지 않는 게 관행인 데다 ‘설마’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투자는 반려됐고, 한 달 뒤 A씨는 소프트뱅크벤처스를 나와 전기스쿠터 공유 스타트업 대표로 변신해 있었다.
최 대표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상당량의 회사 자료와 운영 노하우가 넘어간 뒤였다. A씨가 올룰로의 데이터를 자신이 만든 자료처럼 사용해 자신이 설립한 회사의 투자자 참고자료로 쓰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했다.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A씨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들어갔다.
A씨는 사업모델을 참고하는 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미국 공유스쿠터 업체 라임과 버드를 따라한 스타트업이 세계적으로 넘쳐난다는 것이다. 올룰로의 사업 자료는 대부분 공개된 내용인 데다 업계 분석 차원에서 다른 업체와 함께 소개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A씨는 “과거부터 여러 업체에서 모빌리티사업을 담당해 창업도 자연스레 생각했다”며 “해당 분야 투자심사를 맡다 보니 이런 논란이 발생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선 보기 드문 일이 생겼다는 반응이 나온다. 스타트업의 창업 아이디어와 운영 상황을 훤히 알 수 있는 VC 특성상 베끼기 창업이 ‘윤리적 금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VC마다 ‘윤리규정’을 마련해 기밀 유출 등을 하지 않겠다는 심사역의 동의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히 사업모델을 따라한 것만으로는 제재할 근거도 마땅찮은 실정이다. 한 VC 관계자는 “심사역이 스타트업 자료를 열람할 때 NDA부터 맺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끊이지 않는 베끼기 논란
스타트업 사이에서도 카피캣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엔 프리랜서 중개업체 크몽이 내놓은 초단기 인력채용 서비스 ‘쑨’이 또 다른 스타트업 니더의 ‘급구’와 비슷해 논란이 됐다.
두 업체는 처음엔 서로 협력하기로 했지만 크몽이 독자적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다툼이 발생했다. 두 서비스 모두 사용자 위치를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맞춤형 업종을 추천하는 사업모델이어서다. 니더 측은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은 없지만 앞으로 핵심 알고리즘을 특허 등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챗봇(채팅로봇) 스타트업인 띵스플로우도 봉봉과 카피캣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띵스플로우가 서비스한 타로카드 챗봇을 봉봉이 무단으로 베껴 서비스했다. 띵스플로우가 직접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서야 봉봉은 유사 서비스를 중단했다.
잠금화면 앱(응용프로그램) 서비스를 운영하는 NBT와 버즈빌은 옐로모바일의 유사 서비스 ‘쿠차슬라이드’에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버즈빌은 옐로모바일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낸 끝에 전략적 협력을 맺는 걸로 다툼을 마무리했다.특허청은 지난달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하고 오는 6월부터 이를 적용해 아이디어 도용 및 베끼기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관련 법률을 숙지하지 못한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배태웅/김남영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