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앤엠 '억울한 사연' 귀 기울인 법원, 이천市에 "공장 허가하라" 조정 권고

한경 보도로 해결 '실마리'

이천시 말 믿고 공장 증설 추진
환경부가 고시 해석 뒤집으며 잘나가던 기업 부도 위기 몰려

2심법원, 해결 빠른 조정 권고
환경부 "권고안 취지 살펴볼 것"
“부도 위기까지 몰리면서 절벽 끝에 매달린 상황이었는데 법원이 한 줄기 빛이 돼줬습니다. 억울한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런 조정권고안을 내줬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공장 증설이 가능하다는 정부 말을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고 부도 위기까지 몰린 중소기업 대표가 있었다. 한국경제신문이 단독 보도(1월 4일자 A1, 3면·사진)한 김진락 이앤엠 대표의 얘기다. 이앤엠은 엘리베이터 부품, 전기 배선반 등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다. 절망에 빠져 있던 김 대표에게 본지 보도가 나간 뒤 ‘희망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법원 “억울함 충분히 이유 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2행정부(부장판사 양현주)는 최근 김 대표가 이천시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김 대표와 이천시 간 조정을 권고했다. 재판부가 내놓은 조정 권고안은 ‘이천시는 산업단지계획승인신청서 반려통보를 취소하고, 그 취소가 이뤄지면 원고는 소송을 취하한다’는 내용이다. 원고의 억울한 사정이 충분히 이유 있고, 분쟁을 신속히 해결하려면 판결보다 조정이 더 낫다는 게 권고안의 취지였다. 지난 18일로 예정됐던 선고도 무기한 연기됐다.이 소송은 김 대표가 2016년 팔당·대청호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이자 고향인 경기 이천시에서 공장 증설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공장 예정부지는 팔당·대청호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 2권역에 포함돼 있었지만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이천시에서는 공장 허가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앞서 7건의 허가 사례도 있었다. 2권역은 상수원과 물길로 50㎞ 이상 떨어져 있어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 김 대표는 50억원을 대출받아 부지를 사고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2개 공장 중 하나를 팔아 설계와 기계 발주 비용으로 썼다.
법원이 보여준 ‘좋은 재판’

2017년 7월 환경부가 고시 위반을 이유로 갑자기 제동을 걸었다. 관련 환경부 고시는 ‘자연보전지역, 농림지역 및 관리지역 중 보전·생산관리지역을 도시지역 중 공업지역으로의 변경은 제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중 ‘제한’의 의미를 ‘조건부 허용’으로 판단하던 환경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제한’을 ‘금지’로 바꿔 판단했다. 김 대표는 판단 변경의 첫 대상이었다.김 대표는 처분을 내린 이천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환경부는 처분청이 아니기 때문에 소송 대상이 될 수 없어서다. 1심에서는 환경부가 고시 해석을 바꾼 결과여서 이천시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환경부 판단에 따른 것뿐이라는 식의 법적 판단이라면 2심에서의 결과도 크게 달라지기 어려웠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조정’을 통해 양측에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조정은 판결보다 분쟁 해결이 빠르다. 법적으로 완벽히 판단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지혜의 길을 모색해보는 과정이다.

한 고위법관 출신 변호사는 “법원이 재판 당사자의 억울한 사정을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좋은 예”라며 “김명수 대법원장이 말한 ‘좋은 재판’이 이런 재판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법원의 조정 권고안을 받아든 이천시는 28일 환경부에 “의견을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천시도 기업의 억울함을 이해하고 있는 만큼 환경부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조정 권고안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련 내용을 검토 중”이라며 “권고안의 취지를 잘 살펴보겠다”고 말했다.김 대표는 “법원의 권고안대로 방법을 찾아주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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