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경기 더 나빠지기 前 곳간 채워놓자"…기업들 회사채 발행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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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확보 분주한 기업들▶마켓인사이트 1월 28일 오후 4시15분
1월 회사채 발행 21개사 6.3조 '사상 최대'
목표보다 59% 증액…운영자금 선제 조달 나서
SK인천석화·현대제철, 발행액 두 배 늘려
CP잔액 54조·전자단기사채도 23조로 급증
SK인천석유화학은 지난 22일 6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 회사가 지금껏 회사채 시장에서 조달한 금액 중 최대 규모다. 당초 3000억원어치를 발행할 계획이었으나 1조4400억원의 투자 수요가 몰리자 발행금액을 두 배로 늘렸다. 제조원가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국제 유가가 지난해 10월 이후 크게 떨어지면서 사업환경이 급변할 것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기로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유가 급락에 따른 재고 손실과 정제 마진 축소가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운영자금을 조기에 확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줄 잇는 유동성 확보 행렬
SK인천석유화학 외에 GS칼텍스(5000억원) 현대오일뱅크(2000억원) 한화케미칼(1500억원) SK케미칼(1500억원) 등 정유·화학업체들이 연초부터 줄줄이 대규모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 이들 모두 처음 계획보다 조달금액을 늘렸다.
석유화학뿐 아니라 음식료 유통 철강 통신 등 주요 산업에 걸쳐 기업들의 자금 확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달 회사채 발행에 나선 21개 기업 중 한솔케미칼 한 곳을 제외하곤 모두 목표한 것보다 많은 금액을 조달하기로 했다. 이들 기업은 애초 증권신고서에 기재한 회사채 발행금액(3조9700억원)보다 59.4% 늘어난 6조3280억원어치를 발행하기로 했다. 현대제철(7000억원) 등 몇몇 기업은 계획보다 조달금액을 두 배로 늘렸다.기업들이 불황에 대비해 미래에 필요한 현금을 미리 조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하향 조정하면서 소비·투자·고용지표의 동반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했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2.6%, 설비투자 증가율은 2.0%에 머물고 건설투자는 3.2%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취업자 수도 14만 명 증가하는 데 그칠 전망이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던 수출마저 지난해 12월 감소세로 돌아섰다.
증권회사 기업금융담당 임원은 “향후 영업환경 악화로 실적과 재무상태가 나빠지면 이전보다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이 같은 불안심리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는 가운데 선제적인 유동성 확보에 뛰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풍부한 투자 수요가 배경때마침 자본시장에선 자금조달 환경이 개선됐다. 경기침체 우려가 반영돼 시장금리가 떨어진 데다 투자자의 자금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한 기관투자가들은 새해 넉넉히 확보한 신규 운용자금을 확정금리 상품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이달 들어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낸 매수주문 물량만 17조2550억원에 달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평균 청약경쟁률(4.34 대 1) 역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관들이 안전자산 중 비교적 수익률이 높은 투자처로 눈을 돌리면서 회사채 같은 확정금리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초우량 투자상품인 국고채는 장기간 불황 우려에 눌려 기준금리(연 1.75%)에 근접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회사채 금리(3년물 기준)는 28일 기준 ‘AA-’ 등급이 평균 연 2.267%, ‘BBB-’ 등급은 연 8.352% 수준이다.기관이 쉽게 투자에 나서지 못하는 저신용 회사채도 개인투자자의 공격적인 매수에 힘입어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신용등급 BBB)와 한진(BBB+)은 이달 진행한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개인들이 매수 주문의 상당물량을 채운 데 힘입어 각각 3.58 대 1과 3.47 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 2~3년 만기에 연 4%대 이자를 준다는 점이 매력으로 부각되면서 개인들이 증권사 소매판매부서를 통해 집중적으로 매수주문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인프라코어의 2년 만기 회사채(880억원) 금리는 연 4.652%, 한진의 2년물(300억원)과 3년물(700억원) 금리는 각각 연 3.886%와 연 4.668%다.
김진성/이태호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