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노위 참여 수정안 모두 부결…민주노총 지도부-대의원 '대혼란'

사회적 대화마저 걷어찬 민주노총

불참·조건부 불참·조건부 참여
세 가지 안건 모두 부결되자
위원장 "권한 중앙위에 넘겨달라"
대의원들, 반발하며 '정회 소동'

현장 지켜본 경사노위 공익위원
"이것이 식물 민주노총의 현주소"
< 경사노위 참여 여부 표결하는 민주노총 대의원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가 열린 28일 서울 화곡동 KBS아레나홀에서 대의원들이 표결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불참, 조건부 불참, 조건부 참여 등 세 가지 안을 놓고 밤늦게까지 격론을 벌였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사회적 대화 참여가 ‘사실상 부결’됐다. 사흘 전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자중지란에 빠진 민주노총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민주노총은 28일 서울 화곡동 KBS아레나홀에서 67차 대의원대회를 열고 아홉 시간이 넘는 토론과 표결을 벌였으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석 찬성파와 반대파 의견이 엇갈리면서 참여 여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자중지란 빠진 민주노총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2시부터 밤 12시를 넘기면서까지 토론을 벌였다. 이날 회의에 올라온 수정 안건은 ‘참여 반대’(1안), 탄력근로제 확대·최저임금제 개편 중단을 전제로 한 ‘조건부 불참’(2안),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 시 탈퇴한다는 ‘조건부 참여’(3안) 등 총 세 개였다. 각각 안건에 대해 958명, 936명, 912명이 표결에 참여해 각 331명, 362명, 402명만 찬성표를 던져 세 가지 안 모두 부결됐다.

세 가지 안이 모두 부결되면서 원안에 대한 표결 의견도 나왔으나 앞서 김명환 위원장의 “원안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발언이 문제가 됐다. 3안 부결 이후 “원안에 대한 투표를 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위원장이 조금 전에 포기한다고 했다”는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서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에 김 위원장이 “포기한다고 한 적이 없다”고 하자 일부 대의원은 “회의록을 공개해라” “영상 돌려보자”는 주장이 쏟아지면서 정회에 들어갔다.

이후 김 위원장은 “오늘 더 이상 원안에 대해 판단을 구하는 것은 무망하다고 판단한다”며 “향후 새로운 사업 계획을 짤 수 있도록 대의원들이 권한을 중앙위원회에 위임해 달라”고 말했다.대의원대회를 지켜본 경사노위 공익위원은 “오늘 민주노총이 보인 모습은 민주노총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직선으로 뽑은 위원장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고 각기 이해관계가 다른 대의원들이 자기 주장만 쏟아낸 ‘식물 민주노총’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강경파 벽에 막힌 사회적 대화

이날 ‘사실상 부결’ 사태의 원인은 민주노총 내 최대 조직이자 영향력이 가장 큰 금속노조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금속노조는 회의 시작 전 ‘경사노위 불참과 대(對)정부 투쟁 수정안’이라는 유인물을 통해 대의원 설득에 나섰다. 금속노조는 경사노위 참여의 선결 조건으로 △탄력근로제 확대 철회 △최저임금제도 개편 철회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노정 교섭 정례화를 내걸었다. 겉으로는 참여 조건을 내세웠지만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내걸고 참여 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금속노조의 수정안은 ‘민주노총을 경사노위에 모셔가려면 꽃가마를 대령하라’는 것”이라며 “사실상 정부에 백기투항을 요구한 것”이라고 황당해했다.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등은 ‘경사노위 참가가 노동자에게 독이 되는 아홉 가지 이유’를 주장하며 경사노위 참여를 반대했다.

양대 노총 각 1명과 노동계 추천위원 3명 등 5명으로 이뤄지는 경사노위 구성과 관련해선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 대한 비난도 나왔다. 경사노위 참여 반대파는 “한국노총이 늘 하던 대로 민주노총의 뒤통수를 치고 찬성표를 던지면 민주노총은 속수무책이 된다”며 “한국노총만 믿고 가자는 것인데, 경험에 비춰볼 때 그들에게 민주노조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했다.

김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주장도 나왔다. 몇몇 대의원은 “위원장 자신의 집행부가 짜놓은 사업계획안을 (부결이 됐다고 해서) 스스로 폐기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며 “원안 투표를 하지 않을 경우 이 자리에서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