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일본 노인들에게 확산되는 '전자화폐'

일본 노인들 사이에서 예상 밖으로 빠른 속도로 각종 전자화폐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현금 사용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고 여겨졌던 일본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도 바뀌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70대 이상 고령자의 전자화폐 이용액이 최근 5년 새 87%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증가율은 전체세대 평균 증가율 58%를 크게 웃도는 것입니다.전자화폐 이용금액 수준도 젊은이에 못지않은 모습입니다. 70세 이상 세대주의 전자화폐 이용금액은 2012년에 8688엔(약 8만9111원)으로 전체 평균의 80%수준에 머물렀지만 2017년에는 1만6216엔(약 16만6200원)으로 전체 평균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80세 이상의 경우엔 전자화폐 이용금액이 1만7492엔으로 전 세대 중에서 가장 많기도 했습니다.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한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일본 노인들의 전자화폐 이용이 늘었을까요.

고령의 부모들에게 전자화폐를 쥐어주는 자녀들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많습니다. 편의점 체인 세븐일레븐과 연계된 세븐앤드아이홀딩스가 발행한 전자화폐 ‘나나코(nanaco)’는 한 번에 입금할 수 있는 금액이 5만 엔(약 50만원)입니다. 현금카드를 들고 다니면서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것보다 편리하고, 안정성이 높아 자녀들이 부모들의 결제수단으로 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노인인구 비중이 높은 도호쿠지역 일부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선 무현금 결제 비율이 50%에 육박해 전국 평균의 두 배 수준에 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일본 기업들도 노년층 전자화폐 이용객을 겨냥한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세븐앤드아이홀딩스를 비롯해 이온 등에선 60세 이상, 65세 이상만 가입할 수 있는 전자화폐 카드를 발급하고 나섰습니다.

일본은 오랫동안 현금왕국으로 불려왔고, 신용카드를 비롯한 각종 비현금 결제가 오랫동안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현금사용에 대한 애착이 강한 고령층은 비현금 결제 도입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자주 지목돼왔습니다. 하지만 도도한 시대의 변화에 고령층의 생활습관도 변화하는 모습입니다.

어쩌면 일본 사회에서 노인들이 ‘지출 방식’측면에선 가장 ‘진보적’인 세대가 될 수도(혹은 강제될 수도)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