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기 환자와 가족 함께 삶을 마무리하는 간병휴가 도입해야"

"정부의 연명의료 정책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한 환자들에게 어떤 지원을 해야할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가족과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업들이 3일 정도 유급 간병휴가를 주는 방안도 고려해야 합니다."

윤영호 서울대의대 교수(건강사회정책실장)는 "임종기에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람들 죽음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국내서 임종기에 연명의료를 받지 않은 환자는 3만5431명이다. 지난해 사망자(28만5534명)의 12% 정도만 연명의료를 거부했다는 의미다. 여전히 적은 수다.웰다잉시민운동 운영위원회 이사를 맡고 있는 윤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한 이유는 모든 임종기 환자가 치료과정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며 "나머지 25만명은 자기결정권을 갖고 임종을 맞이했는지, 아닌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임종 과정을 결정할 수 있다. 건강할 때 미리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두면 임종기에 불필요한 치료를 받지 않게 된다. 치료해도 낫기 힘든 임종기에 접어든 뒤 의료진과 상의해 연명의료계획서를 쓸 수도 있다. 환자가 이 같은 서류를 남기지 않았다면 가족이 결정한다. 서류로는 남기지 않았지만 평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환자라면 가족 두 명이 연명의료 거부 결정을 하면 된다. 평소 환자의 뜻을 알기 어렵다면 모든 가족이 동의해야 한다.

국내서 환자 스스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결정한 비율은 31.5%(1만1162명)에 불과했다. 여전히 3명 중 2명은 가족이 대신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했다. 윤 교수는 "환자의 자율적 의사 결정을 위해 제도를 만들었는데 여전히 가족이 결정하는 비중이 높은 것은 문제"라며 "건강할 때 임종기를 설계해야 하는데 병원에 와서 결정하는 하는 것도 제도 취지에 맞지 않다"고 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으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그 비용을 임종기 환자를 위해 써야 한다"며 "죽음을 삶의 완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쉽게 쓸 수 있어야 한다. 지역마다 있는 주민센터에서 의향서를 작성토록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 문진표에 의향서를 함께 포함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의향서 작성을 돕는 상담사도 늘려야 한다. 교육부는 학생때부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홍보를 해야 한다. 행정안전부는 국민들이 접근하기 쉬운 곳에서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돕고 여성가족부는 삶의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윤 교수는 "정부가 의지를 갖고 여러 부처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임종 전 자서전 등을 쓰면서 삶의 기록을 남기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다.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것은 물론 가족들도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웰다잉플래너다. 윤 교수는 "훈련된 웰다잉플래너가 함께 삶의 기록을 쓰도록 돕고 장기기증은 어떻게 할지, 장례 장묘는 어떻게 할지 등을 미리 정해둬야 한다"며 "설 연휴처럼 가족들이 모였을 때 죽음에 대해 함께 터놓고 얘기해봐야 한다"고 말했다.웰다잉 문화가 확산되면 은퇴자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에도 도움된다.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 노인 자살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윤 교수는 "건강한 상태에서 병원을 찾았을 때, 중증 질환에 걸렸을 때, 임종에 임박했을 때 의향서를 작성하도록 의료기관에서 도움을 주면 건강보험 혜택을 주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며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상태에서 자신의 죽음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