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확산 조짐에다 AI 불안까지…시름 깊은 충북 축산농가

2년 전 구제역 덮친 보은 축산농가 문 걸어 잠근 채 노심초사
미호천서는 AI 항원 검출…"최악의 설 연휴 되나" 불안감 커져

"2년 전 악몽이 떠올라 구제역 얘기만 나와도 TV 채널을 돌립니다.축사 문을 걸어 잠가 외부인 출입을 막고 있지만,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충북 보은군 탄부면 이모(52)씨는 요즘 축사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경기도 안성의 구제역 발생 이후 방역을 강화하고 긴급 백신 접종까지 마쳤지만, 충주에서 추가 확진 소가 나오면서 불안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인 2017년 2월 9일 구제역에 걸려 생떼 같은 소 278마리를 땅에 묻은 뼈아픈 기억이 있어서다.인근 젖소 농장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가 옮겨져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끔찍한 일을 당했다.

이후 자식 같은 소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1년 가까이 송아지를 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던 그는 지난해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축산을 재개했다.

그는 "소를 묻고 나서 밥맛을 잃어 체중이 5㎏ 넘게 빠졌다"며 "이번 만큼은 몹쓸 병이 더 번지지 않고 진정되기 바란다"고 말했다.지난달 31일 충주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인근 농장으로 확산 기미를 보이면서 충북 지역 축산 업계가 바싹 긴장하고 있다.

인구 이동이 많은 설이 코 앞이어서 자칫 광범위한 확산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충북에서는 2017년 보은군 마로·탄부면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7 농가 953마리의 소가 살처분됐다.앞서 2014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 사이에도 진천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인근 시·군으로 퍼져 36 농가, 3만6천909마리의 소·돼지가 땅에 묻히는 등 2∼3년 주기로 구제역이 발생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 28일 청주시 흥덕구 미호천에서 채취한 야생조류 분변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AI) 항원이 검출돼 반경 10㎞의 가금류 이동이 제한된 상태다.

AI 항원의 고병원성 여부는 다음 주 추에 나올 예정인데, 일각에서는 구제역과 AI가 동시에 발생하는 최악의 설 연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제는 AI 항원이 검출된 곳이 충북 최대 오리·닭 사육지역이라는 점이다.

반경 10㎞ 안에 든 음성군 대소·맹동·삼성면과 진천군 이월·광혜원면 등에만 가금류 농장 147곳이 밀집해 있다.

392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해 사상 최악의 기록을 남긴 2016년 겨울 AI도 음성군 맹동면에서 시작됐다.

도는 구제역과 AI가 동시에 창궐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총력 방역에 돌입한 상태다.

도내에서 사육되는 소·돼지 77만4천 마리에 대해 구제역 예방 백신 접종을 마쳤고, 도 본청과 일선 시·군에는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해 방역상황을 진두지휘하기로 했다.도내 14곳에 운영되던 거점소독소를 2∼3배 늘리고, 광역 방제 차량 28대와 군부대 제독 차량 3대를 투입해 축사 주변 소독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