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의 R까기] 설연휴 부동산 민심,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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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과는 다른 분위기 예상민족의 대명절인 설이 시작됐다. 주말과 붙어 있다보니 제법 여유있는 설 연휴 기간이다. 모처럼 전국에 뿔뿔히 흩어져 있던 가족들의 얼굴도 볼 수 있다. 동시에 전국의 부동산 현황을 알 수 있는 때도 이러한 명절즈음이다.
경남·북, 충남 등 일부지역, 악성 미분양 만성화될 우려
오랜 기간동안 부동산 업계에서는 설과 추석 명절을 시장 전환의 시기로 봐왔다. 이른바 '밥상머리' 민심이 움직이면서 명절 이후에 시장이 요동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명절 이후에는 이사철과 맞물려 있다보니 부동산 민심이 움직이기에는 적절한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부동산'의 '부'자도 꺼내기 힘들 전망이다. 너나할 것 없이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느끼고 있어서다. 집값이 높거나 다주택인 친척들이라면 보유세 걱정을 해야하고, 이사를 앞둔 친척들은 집이 나가지 않아 걱정일 것이다. 무주택자라면 분양을 받을지, 전세로 계속 갈지 등을 갈등하고 있는 시기다. 그야말로 고민이 많은 시기다.
작년 추석만 하더라도 분위기는 달랐다. 서울에 집을 가진 친척들은 표정관리 하느라 바빴고, 지방의 친척들은 속상한 마음을 감추느라 바빴다. 집값의 상승률은 차이가 있었고,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가시화되지 않았을 때였으니 말이다. 얘기를 듣자면 배가 아플만한 친척들도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집값 뿐만 아니라 먹고사는 걱정을 하고 있어서다. 집을 처분하기도 쉽지 않다. 내놔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 됐으니 말이다. 미분양이 심각한 경남, 경북, 충남, 경기지역 일부라면 정도는 더욱 심각하다. 고향 방문 길에 불꺼진 아파트들이 눈 앞에 줄줄이 펼쳐질 수 있다.이러한 심각성은 숫자로도 나타난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아파트는 줄고 있지만, 준공 후 미분양이라고 불리는 '악성 미분양'은 늘고 있다. 지난달 말 전국 악성 미분양 물량이 4년 2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더군다나 올해에는 2016년 집중 공급된 아파들이 준공을 앞두고 있어 악성 미분양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준공 후 미분양은 작년 12월말 기준으로 1만6638가구여서 2014년 10월 이후 가장 많은 수치였다.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꼽히는 곳은 거제다. 지역 내에 준공 후 분양이 안된 아파트가 1000채가 넘는다. 천안, 당진, 김천 등도 미분양 악성 미분양이 500가구 이상이다. 문제는 아파트만이 아니다. 단순히 주택심리가 위축된 게 아니라 구매력도 전반적으로 약해졌기 때문이다. 아파트 뿐만 아니라 도소매, 자영업까지 타격을 받고 있다.물론 과거를 기억하는 친척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 "예전에 IMF 때랑 금융 위기 때에는 더 심각했어. 그 때 전국에 미분양이 10만개가 넘었었지.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나은 거 아닌가?" 1998년, 2007~2009년에도 미분양이 심각했다. 숫자로만 비교한다면 지금 수준이 나을 수 있다. 다만 그 때랑 다른 점은 전국적이냐 지역적이냐다. 최근 몇년간 서울은 미분양이 100가구를 넘긴 적이 드물고 세종은 '0' 수준을 유지중이다. 지역별 양극화가 벌어지는 신호가 강해지고 있다. 악화되다 못해 만성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짙다. 거제의 조선산업, 천안의 디스플레이산업, 당진의 철강산업…. 한 때는 대한민국을 이끌고 지역사회를 이끌던 산업이었고 여기에는 기업과 근로자들이 있었다. 명절이면 서울에서 고생한다면서 위로를 건네던 친척이 있었다. "서울에 사는 것만 포기하면 지역도 괜찮아. 여기 집값고 싸고 물가도 싸거든. 서로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동네야."
최근 정부가 남부내륙철도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했다. 문득 지역 분위기가 반전됐는지 궁금했다. 철도 노선도 김천-합천-진주-고성-통영-거제 등으로 연결될 예정이니 뭔가 희망적인 얘기를 들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친척의 반응은 명쾌했다. "왜 가노"였다. 먹고살 형편도 어려운데 돌아다닐 여유도 없고, 지역별로 산업 연관성도 거의 없는데 누가 오가냐는 얘기였다. "기차 생기면 서울 사람들이나 구경하러 오기 좋겠지"라는 말도 남겼다. 지역에서는 이런 데에 들일 돈으로 당장의 경제나 살리라는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이들 지역은 기업이나 산업의 흥망성쇠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다. 산업에 따라 좌우되는 동네다보니 어느정도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 있다. 문제는 장기화 및 만성화다. 이제는 불꺼진 아파트가 2년을 넘고 있다. 서울에서 흔히 말하는 '입주충격'의 차원이 아니다. 불꺼진 아파트처럼 지역경제와 산업의 불도 꺼질까 우려된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