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물건 사지 마라"…서울시 조례안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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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일본산 문구류, 비품, 복사기 등 각종 물품을 별다른 합리적인 이유 없이 사용하고 있는 상황은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진정한 광복을 이루기 위해서 공공기관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소속 홍성룡 서울시의원이 서울시와 각 구청 등 산하기관, 서울시교육청, 공립학교 등에 일본산 제품의 사용 현황 전수조사를 요청하며 한 말이었습니다. 홍 의원은 “전수조사 결과 이들 공공기관에서 3년간 500억원 규모의 일본산 제품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조사 과정에서 원산지가 확인되지 않는 제품이 태반이었던 걸 고려하면 실제 일본산 제품 구매액은 3년 간 3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당시 21세기에 맞지 않는 지나친 국수주의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1월 그는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일본산 제품 사용 제한에 대한 견해를 물었습니다. 이에 박 시장은 “일본 제품을 국산품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정밀하게 살펴보겠다”면서도 “서울시가 구입한 일본산 제품은 방송장비, 의료기기, 수질측정기, 누수탐지기 등 특정분야에 한정돼 있고 대체가 쉽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홍 의원의 뚝심은 조례안 발의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홍 의원은 지난달 24일 ‘서울시 일본 전범 기업과의 수의계약 체결 제한에 관한 조례안’과 ‘서울시교육청 일본 전범기업과의 수의계약 체결 제한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했습니다. 일본산 제품에서 일본 전범 기업 제품으로 대상이 축소되긴 했지만,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치법규를 만든 겁니다. 이 조례안에는 서울시의원 정원의 27%인 30명이 찬성했습니다.
조례안 내용은 서울시, 시의회, 시 산하기관, 그리고 서울시교육청과 관할 학교들이 일본 전범 기업과 수의계약을 체결하지 않도록 서울시장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시장이 일본 전범 기업과의 계약 체결 제한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교육 및 홍보를 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조례안에 등장하는 일본 전범 기업이란 2012년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발표한 기업 299곳 중 현존하는 284곳을 가리킵니다. 파나소닉, 도시바, 히타치, 가와사키중공업, 미쓰비시, 스미토모, 기린 등 일본 대기업 상당수가 포함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일본의 전황이 불리해지자 일본 정부는 일본 내 기업들을 군수물자 생산에 총동원해 총력전을 폈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일본 대기업들은 웬만하면 전쟁에 일조할 수 밖에 없었단 뜻입니다. 홍 의원은 “284곳의 전범 기업 이외에 다른 일본 기업들도 직간접적으로 전쟁으로부터 혜택을 봤기 때문에 전범기업 범주로 분류된다고 보지만, 법령에서는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284곳의 전범 기업으로 한정했다”고 말했습니다.
홍 의원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지지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대법원이 일본 기업들을 대상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보상을 명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이에 불복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에게 이번 조례안이 징벌적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홍 의원은 “일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면 우리 세금이 일본에 흘러들어가 전쟁 준비를 위한 군비 확장에 쓰인다”고 주장했습니다.하지만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인 시대착오적 조치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현재 일본 기업들 제품을 구매하는 건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라 ‘제품이 좋아서’인데, 이를 제한하면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서울시 공무원들과 시민들이라는 겁니다. 박 시장도 토로했듯이 방송장비, 의료기기, 각종 측정기 등 일본 제품 중에는 대체가 어려운 제품들이 많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일본 기업들을 과거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 정부와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조례는 ‘주장’이 아니라 ‘법령’이기 때문에 또 다른 외교적 마찰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도 그 중 하나인데요. 홍 의원 스스로도 이를 인정해 “WTO 정부조달협정으로 조달시장이 개방된 이상 일본 기업 제품 구매를 아예 금지하면 이를 위반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조례 문구를 ‘금지해야 한다’가 아닌 ‘노력해야 한다’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홍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국가가 나서서 일본과의 무역 자체를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습니다. 284개 기업 중에 일본의 주요 대기업들이 상당수 포함돼있어서입니다. 전범기업에 이득이 될 수 있으니 서울시 공무원들은 앞으로 일본 연수뿐만 아니라 여행도 못 가게 한다는 비아냥까지 나옵니다. 또 폭스바겐 그룹 차량인 아우디 등 독일 기업 관련 제품도 불매해야 합니다. 일본과 함께 2차 세계대전 추축국을 이룬 독일의 전범기업이니까요.
홍 의원은 조례 발의 배경에 대해 “일부 일본 기업들은 대일항쟁기 당시, 전쟁물자 제공 등을 위해 우리 국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공식 사과와 배상이 없다. 올바른 역사인식 확립 및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번 조례안이 성공적으로 통과되면 향후 17개 광역시, 도에도 같은 조례안이 제정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임락근 지식사회부 기자 rklim@hankyung.com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소속 홍성룡 서울시의원이 서울시와 각 구청 등 산하기관, 서울시교육청, 공립학교 등에 일본산 제품의 사용 현황 전수조사를 요청하며 한 말이었습니다. 홍 의원은 “전수조사 결과 이들 공공기관에서 3년간 500억원 규모의 일본산 제품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조사 과정에서 원산지가 확인되지 않는 제품이 태반이었던 걸 고려하면 실제 일본산 제품 구매액은 3년 간 3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당시 21세기에 맞지 않는 지나친 국수주의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1월 그는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일본산 제품 사용 제한에 대한 견해를 물었습니다. 이에 박 시장은 “일본 제품을 국산품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정밀하게 살펴보겠다”면서도 “서울시가 구입한 일본산 제품은 방송장비, 의료기기, 수질측정기, 누수탐지기 등 특정분야에 한정돼 있고 대체가 쉽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홍 의원의 뚝심은 조례안 발의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홍 의원은 지난달 24일 ‘서울시 일본 전범 기업과의 수의계약 체결 제한에 관한 조례안’과 ‘서울시교육청 일본 전범기업과의 수의계약 체결 제한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했습니다. 일본산 제품에서 일본 전범 기업 제품으로 대상이 축소되긴 했지만,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치법규를 만든 겁니다. 이 조례안에는 서울시의원 정원의 27%인 30명이 찬성했습니다.
조례안 내용은 서울시, 시의회, 시 산하기관, 그리고 서울시교육청과 관할 학교들이 일본 전범 기업과 수의계약을 체결하지 않도록 서울시장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시장이 일본 전범 기업과의 계약 체결 제한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교육 및 홍보를 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조례안에 등장하는 일본 전범 기업이란 2012년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발표한 기업 299곳 중 현존하는 284곳을 가리킵니다. 파나소닉, 도시바, 히타치, 가와사키중공업, 미쓰비시, 스미토모, 기린 등 일본 대기업 상당수가 포함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일본의 전황이 불리해지자 일본 정부는 일본 내 기업들을 군수물자 생산에 총동원해 총력전을 폈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일본 대기업들은 웬만하면 전쟁에 일조할 수 밖에 없었단 뜻입니다. 홍 의원은 “284곳의 전범 기업 이외에 다른 일본 기업들도 직간접적으로 전쟁으로부터 혜택을 봤기 때문에 전범기업 범주로 분류된다고 보지만, 법령에서는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284곳의 전범 기업으로 한정했다”고 말했습니다.
홍 의원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지지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대법원이 일본 기업들을 대상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보상을 명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이에 불복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에게 이번 조례안이 징벌적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홍 의원은 “일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면 우리 세금이 일본에 흘러들어가 전쟁 준비를 위한 군비 확장에 쓰인다”고 주장했습니다.하지만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인 시대착오적 조치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현재 일본 기업들 제품을 구매하는 건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라 ‘제품이 좋아서’인데, 이를 제한하면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서울시 공무원들과 시민들이라는 겁니다. 박 시장도 토로했듯이 방송장비, 의료기기, 각종 측정기 등 일본 제품 중에는 대체가 어려운 제품들이 많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일본 기업들을 과거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 정부와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조례는 ‘주장’이 아니라 ‘법령’이기 때문에 또 다른 외교적 마찰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도 그 중 하나인데요. 홍 의원 스스로도 이를 인정해 “WTO 정부조달협정으로 조달시장이 개방된 이상 일본 기업 제품 구매를 아예 금지하면 이를 위반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조례 문구를 ‘금지해야 한다’가 아닌 ‘노력해야 한다’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홍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국가가 나서서 일본과의 무역 자체를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습니다. 284개 기업 중에 일본의 주요 대기업들이 상당수 포함돼있어서입니다. 전범기업에 이득이 될 수 있으니 서울시 공무원들은 앞으로 일본 연수뿐만 아니라 여행도 못 가게 한다는 비아냥까지 나옵니다. 또 폭스바겐 그룹 차량인 아우디 등 독일 기업 관련 제품도 불매해야 합니다. 일본과 함께 2차 세계대전 추축국을 이룬 독일의 전범기업이니까요.
홍 의원은 조례 발의 배경에 대해 “일부 일본 기업들은 대일항쟁기 당시, 전쟁물자 제공 등을 위해 우리 국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공식 사과와 배상이 없다. 올바른 역사인식 확립 및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번 조례안이 성공적으로 통과되면 향후 17개 광역시, 도에도 같은 조례안이 제정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임락근 지식사회부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