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삼성' 폭스콘, 반·디 공략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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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한국 언론사 중 유일하게 폭스콘 종무식 취재1만6000석 본 행사장이 가득 찼다. 참석 인원은 아래층 행사장까지 합쳐 3만5000여 명. 대만 언론에서 일컫듯 “참석 인원 기준 세계 최대 기업 행사”라고 할 만했다. 106만 명에 이르는 전 세계 직원, 대만 국내총생산(GDP)의 26.7%에 달하는 매출 규모 등으로 ‘대만의 삼성’으로 불리는 폭스콘의 종무식 현장이다. 중국과 대만 등 중화권 기업들은 대부분 춘제(春節·설) 연휴를 앞두고 종무식을 연다.
"한계에 이른 아이폰 하청 사업서 벗어나자"
궈타이밍 회장 "트럼프와 통화"
美에 디스플레이 공장 예정대로
中엔 10조원 반도체 공장 추진
아이폰 생산공장은 인도로 이전
반도체 등 새로운 사업서 삼성 등 韓업체와 경쟁 불가피
궈타이밍(郭台銘) 폭스콘 회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10년 중 가장 어려웠던 한 해였지만 그룹 매출은 6조대만달러(약 218조원)를 넘어 2008년 대비 3배 이상 증가 했다”고 발표했다. 한계에 이른 기존 사업의 수익성을 앞으로 디스플레이와 반도체로 돌파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지난 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폭스콘 종무식에 한국경제신문은 한국 언론사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았다.3만5000명 참가…세계 최대 기업 행사
애플 제품을 수탁생산하며 급성장해온 폭스콘은 지난해 12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8% 이상 줄어 비상이 걸렸다. 주요 고객사인 애플의 아이폰 판매가 부진한 탓이었다.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다. 그럼에도 지난해 연간 매출은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 비중을 확대해온 결과다. 궈 회장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글로벌 기업들에 큰 악재로 떠오르고 있지만 폭스콘은 오히려 기회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직접 통화했다”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궈 회장은 그러면서 지난해 6월 미 위스콘신주에서 첫 삽을 뜬 디스플레이 공장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사업장에 퇴직 미군을 우선 고용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너무 성공적이라 일손을 구하기 힘들까 걱정”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많은 기업이 몸을 움츠리고 있지만 폭스콘은 오히려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중국 주하이에 10조원을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폭스콘이 이 공장에서 D램 생산에 도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까지 20조원에 가까운 돈을 D램 생산에 쏟아부었지만 최근 푸젠진화가 생산 계획을 사실상 포기하는 등 난관에 봉착했다. D램 공장에 필수적인 미국산 생산장비는 트럼프 정부와 가까운 폭스콘이 아니고는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전자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이후 정저우에서만 4만 명 이상을 해고하며 생산공장을 인도로 이전하고 있는 폭스콘에 중국 정부가 아무 말도 못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폭스콘이 미·중 무역전쟁을 활용해 철저히 잇속을 챙기고 있다”고 전했다.궈타이밍 회장, 내년 총통선거 출마 선언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분야 진출은 폭스콘으로서도 사활이 걸린 문제다. 1974년 창업 이후 휴대폰 및 컴퓨터 등에 들어가는 전자부품과 반제품을 생산하는 폭스콘은 낮은 영업이익률에 허덕여왔다. 2012년까지 연간 영업이익률이 2%를 넘은 적이 없다. 2009년 당시 세계 4위 LCD(액정표시장치) 제조업체 치메이전자 인수를 시작으로 디스플레이 사업 확장에 나선 이유다.
2016년에는 일본 샤프를 사들여 TV와 가전제품 등 소비자 제품으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샤프 인수 직후 궈 회장은 100만 임직원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 샤프의 중국 TV 판매량을 1년 만에 4배로 끌어올렸다. 새로 진출한 사업에서 성과를 거두며 폭스콘의 영업이익률은 2016년 처음으로 4%를 찍기도 했다.폭스콘은 한국 전자업체들의 경쟁자로 빠르게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폰 부품에서 삼성전기, LG이노텍 등과 경합하는 데 이어 디스플레이에서는 LG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와 경쟁하고 있다. D램 양산까지 성공할 경우 시장을 사실상 과점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폭스콘의 미래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정 시기에 대규모 투자를 집중해야 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는 고객 관리와 원가 절감만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스마트폰 부품 산업과 구조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올해 만 69세인 궈 회장이 내년 대만 총통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등 본업 이외의 영역으로 시선을 돌리는 점도 리스크다. 이날 폭스콘 종무식은 대형 대만 국기가 걸리고 “궈타이밍을 총통으로”라는 구호가 등장하는 등 전당대회를 방불케 했다.
타이베이=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