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KTB PE, 전진중공업 매각…'세컨더리 거래' 신호탄 쐈다
입력
수정
지면A23
PEF의 밸류업 사례 탐구▶마켓인사이트 2월 7일 오전 4시15분
경영권 인수한 뒤 사업 재편
6년 만에 매출 4배↑·흑자전환
웰투시에 2563억에 되팔아
토종 PEF가 PEF에 판 첫 사례
10년 만에 투자금 3배 회수
‘3전4기 끝에 세 배의 투자 수익률 기록.’지난해 12월 토종 사모펀드 KTB 프라이빗에쿼티(PE)가 국내 1위 콘크리트 펌프카 업체 전진중공업을 사모펀드 웰투시인베스트먼트(이하 웰투시)에 매각하자 투자은행(IB)업계가 내놓은 평가다. KTB PE는 2007년 920억원에 사들인 전진중공업을 11년여 만에 2563억원에 되파는 데 성공했다. 2007년 조성한 ‘애물단지’ 블라인드펀드(투자처를 미리 정하지 않고 자금을 모으는 펀드)도 청산해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투자 행보를 재개할 수 있게 됐다.
위기 속 구원투수로 나서
KTB PE와 전진중공업의 인연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TB PE는 기업공개(IPO) 가능성을 보고 전진중공업 지분 23%와 이 회사의 100% 자회사인 전진CSM 지분 49%를 사들였다. 문제는 투자 타이밍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글로벌 건설경기가 위축되자 전진중공업은 휘청거렸다. 미국 캐나다 호주 터키 베트남 등 세계 62개 국가에 진출해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이고 있던 게 오히려 독이 됐다.
KTB PE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을 고민하던 전진중공업의 경영권을 인수하며 ‘구원투수’를 자처했다. 예상치 못한 대외 변수로 생긴 위기인 만큼 잘 견뎌내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KTB PE는 인수와 동시에 전열을 재정비했다. 내부 엔지니어 출신인 조재규 연구소장을 새 최고경영자(CEO)로 발탁했다. 서울 봉은사역 인근 사옥을 파는 등 비핵심 자산은 과감하게 정리했다. 비핵심 사업인 타워크레인 사업을 접는 대신 콘크리트 펌프카, 스테이셔너리(콘크리트 펌핑 장비) 등 핵심 사업의 품질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3전4기’ 매각 성공
KTB PE의 경영 아래 전진중공업은 환골탈태했다. 2009년 636억원이던 매출은 2015년 네 배가 넘는 2587억원까지 뛰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8억원 적자에서 430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이후 3년간 누적 1096억원의 상각 전 영업이익을 냈다. 하지만 2013, 2015, 2016년 세 번에 걸친 매각 시도는 모두 무산됐다. 인수 의사를 밝힌 전략적투자자(SI)와의 가격 협상이 늘 막판에 결렬됐다.
KTB PE는 지난해 NH투자증권과 삼일회계법인을 매각주관사로 새로 선정하고 재매각에 나섰다. 콘크리트 펌프카 분야 세계 1~3위 기업인 중국 싼이, XCMG, 줌라이언 등이 관심을 보였다. 국내에서는 현대백화점 계열의 에버다임을 비롯해 한양정밀, 광림, 수산중공업 등이 예비입찰에 뛰어들었다. JKL파트너스, 웰투시 등 재무적투자자(FI)들도 경쟁에 합류했다.본입찰은 웰투시, 에버다임, 한양정밀, 광림 등 네 곳이 남았고, 이들을 상대로 경매호가입찰을 실시했다. 수산중공업이 옛 계열사인 전진CSM을 재인수하기 원한다는 점에 착안해 전진CSM 매각을 통해 실질 인수가를 낮출 수 있다는 점도 인수 후보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자동차 부품업체 모트렉스를 파트너로 끌어들인 웰투시가 과감한 베팅으로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세컨더리 거래 활성화 신호탄
KTB PE는 전진중공업을 매각하면서 ‘KTB 2007펀드’를 청산하는 데 성공했다. LG실트론(현 SK실트론), 범양건영, 폴라리스쉬핑 등에 투자한 이 펀드는 인수 회사들의 실적 부진으로 10년간 펀드 청산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전진중공업 매각 성공으로 손해 보지 않고 펀드를 청산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6월 KTB PE에 합류한 송상현 대표는 2년6개월 만에 기존 포트폴리오 정리를 마무리했다. 올해부터는 신규 투자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전진중공업 매각은 PEF가 보유한 회사를 또 다른 PEF가 매입한 거래로 주목받고 있다. PEF끼리 지분을 사고파는 ‘세컨더리 펀드’ 시장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