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덕, 응급실서 쪽잠 자며 중증환자 제때 치료받는 꿈 꿔"

함께 호흡 맞춘 동기·응급구조사 "중증환자 치료를 위한 이상을 포기 안한 분"
"윤한덕을 보면서 발전을 위한 변화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헌신한 국립중앙의료원 윤한덕(51)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설 연휴 근무 중 숨졌다.병원 응급실과 재난재해 현장에서 쪽잠을 자며 인술을 펼치고 응급의료 전용 헬기 도입 등 제도 개선에 앞장서 왔던 윤 센터장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응급의학과 1호 전공의로 윤 센터장과 4년간 함께 수학했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허탁(55) 교수는 8일 "한덕이는 응급실에 온 중증환자가 절차 등의 이유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데 대한 울분을 가장 참지 못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응급의학과는 1995년에서야 전문의 제도가 생겼는데 두 사람은 전문의가 안 될 수도 있음에도 이 전공을 택했다.허 교수는 윤 센터장에 대해 "평소 나를 '탁형'이라 부르며 수더분한 구석이 있었지만, 의료 현실에 대해서는 굉장히 비판적이었던 친구"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고된 전공의 생활 속에서도 매일 넘쳐나는 중증환자의 치료가 생각처럼 제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바꿔보고자 함께 선진국 사례를 찾아보며 밤을 지새우고는 했다.

당시만 해도 환자가 병원에 실려 오는 동안 제대로 된 응급조치를 받기 어려웠고 병원에 와서도 인턴, 레지던트, 교수 등을 거쳐 치료받게 돼 있어 중간 단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의사가 올 때까지 환자의 진료가 지체되는 경우가 많았던 시절이었다.20년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응급의료 진료 체계도 자리를 잡았다.

허 교수는 전국 500개 응급의료기관의 역할 정립과 국가응급의료전산망 구축, 응급의료 종사자 교육 등 지금의 그 틀을 만든 사람이 바로 윤 센터장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근무가 끝나고 밤늦게 병원 근처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게 유일한 여유였다.많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같은 마음이지만 윤 센터장은 환자들을 제때 치료받게 해 살리려는 열망이 강했다"고 회고했다.
같은 병원에서 근무했던 동료이자 함께 제도 개선을 고민했던 김건남(43) 병원 응급구조사 협회장(전남대병원 응급구조사)는 윤 센터장을 "전쟁터 같은 병원 응급실에서 살면서도 중증환자 치료를 위한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김 협회장은 "2년 차인 2001년 윤 센터장님과 함께 일했다.

병상이 부족해 복도까지 매트리스를 깔고 환자들을 치료하는 생지옥에서도 스태프들을 격려하며 가장 열심이셨다"고 말했다.

그는 "센터장님은 환자가 발생하는 병원 밖에서부터 응급의료 업무가 시작된다며 응급구조사들의 역할에 관심을 많이 갖고 조언해주셨고 관련법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하셨다"고 전했다.

김 협회장은 "작고하시기 사흘 전에도 만나서 오는 13일 예정된 응급구조사 업무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하기로 했는데 믿어지지 않는다.고인을 추모하고 그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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