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독서정치'

감명 받은 책 저자 靑·정부 요직에 잇단 기용
성탄절 이어 설날 詩 인용해 '대국민 메시지'

김현철·이정동·권구훈 이어 김희경 여성가족부 차관 임명
청와대 직원들에게 책 선물도

설에는 나태주 시 '풀꽃' 인용
《저성장시대-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명견만리》 《축적의 시간》 《이상한 정상가족》.

문재인 대통령(얼굴)이 열독한 독서 목록 중 일부다. 공통점은 저자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 보좌관, 북방경제위원회 위원장, 경제과학특별보좌관, 여성가족부 차관 등 요직에 발탁됐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를 참모로 영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장관급 인사부터 특별보좌관까지 책 속에 담긴 내용을 현실에 구현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인사 외에 대(對)국민 메시지를 낼 때도 본인이 읽은 책 구절을 인용하는 등 문 대통령의 ‘독서 정치’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평소 ‘독서광’으로 알려진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김희경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를 여가부 차관으로 임명했다. 기자 출신인 김 신임 차관은 《이상한 정상가족》의 저자다.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인 가족 형태로 간주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년 1월 이 책을 읽고 감명받은 문 대통령이 직접 저자에게 편지를 보냈을 정도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책은 더욱 유명해졌다. 문체부 차관보에서 여가부 차관으로 발탁된 배경에 ‘책’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신설된 경제과학특별보좌관에 임명된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역시 그가 쓴 《축적의 시간》 《축적의 길》 등 이른바 ‘축적 시리즈’가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이 특보를 청와대로 초청해 “대선 때 한창 바쁜데도 이 교수 책을 읽었고, 이런저런 자리에서 말할 때 잘 써먹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직접 쓴 서평과 함께 이 책을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이 특보는 “책 선물을 통해 정책을 만드는 참모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라며 “책에 쓴 것처럼 더 많은 혁신과 실험이 일어날 수 있도록 조언하겠다”고 말했다.

장관급인 권구훈 북방경제위원장과 최근 청와대를 떠난 김현철 전 경제보좌관도 《명견만리》와 《저성장시대-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라는 저서가 문 대통령과의 연결고리가 됐다. 김 전 보좌관은 임명 직후 발탁 배경에 대해 “대통령이 내 책을 읽고 만나자고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평소 생각과 지론이 책 내용과 일치하면서 발탁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문 대통령은 대국민 메시지에도 평소 읽은 책 구절을 적극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지난 설에는 경남 양산 자택에 머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을 인용했다. 지난해 성탄절 메시지에는 박노해 시인의 ‘그 겨울의 시’를 녹였다. 겨울밤 추운 방 안에서도 장터의 거지와 뒷산 노루의 추위를 걱정하는 할머니 모습을 그린 대목을 통해 나눔을 강조했다. 작년 추석 대국민 인사 영상에서는 이해인 수녀의 시 ‘달빛기도’를 직접 낭독해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집권 초 대통령이 읽은 책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참모들이 책을 추려 대통령께 전달한 적도 있지만 사양했다”며 “다독(多讀)가이자 속독(速讀)가인 문 대통령이 섭렵한 책들을 보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분야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