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오버투어리즘'과 전쟁 중…韓도 선제대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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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유명 관광 도시들이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 문제 해결을 위해 강력 대응하고 있다. 훼손된 관광자원과 도시환경을 복원한다는 이유로 관광객 수를 제한하고 관광세와 숙박세를 부과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가벼운 법 위반을 한 관광객에게 엄청난 벌금을 부과하는 곳도 등장했다.
관광객 수 제한·숙박세 부과
파리·바르셀로나 등 이어
베네치아도 5월부터 입장료
오버투어리즘 진단 기준 필요
일각에선 제대로 된 관광 인프라를 갖추지 않은 채 관광객 유치에만 열을 올리던 도시들이 책임을 관광객에게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광객 유치에만 몰두하는 국내 도시도 해외 사례를 거울삼아 오버투어리즘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다.오버투어리즘으로 세금·벌금 부과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올 5월부터 당일치기와 크루즈 관광객에게 1인당 3유로(약 3800원)의 입장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성수기 입장료를 8~10유로로 올리고 내년부터는 입장료를 6유로로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 선박과 호텔 투숙객에게 부과하던 입항세와 숙박세에 당일치기 관광객을 상대로 한 입장료가 더해지면서 이젠 베네치아를 찾는 모든 이가 ‘관광세’를 내게 됐다.
관광객으로부터 세금을 걷어 오버투어리즘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베네치아 외에 여러 도시에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를 비롯해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마요르카 등이 관광세를 부과한다. 일본과 인도네시아 발리는 지난 1월 각각 출국세와 관광세를 도입했다. 인도 타지마할은 문화유산 보존을 이유로 지난해 말부터 입장료를 인상했다.관광객을 대상으로 벌금을 부과하는 곳도 등장했다. 베네치아는 지난해 9월부터 산마르코 광장 계단 등에 걸터앉거나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를 한 관광객에게 200~500유로(약 26만~64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로마는 거리 음주를 금지하고 트레비 분수에 뛰어들면 450유로(약 58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2017년 11월부터 맥주를 마시며 자전거를 타는 ‘맥주 자전거’를 전면 금지했다.
오버투어리즘 예방 나서야
국내에서도 오버투어리즘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서울 북촌한옥마을 외에 전북 전주한옥마을, 경남 통영, 제주 등이 관광객 급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급기야 북촌한옥마을은 지난해부터 원주민의 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해 관광객의 마을 방문 시간을 제한했다. 제주도는 지난해부터 관광세 도입 문제를 놓고 지역 내에서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전문가들은 선제적 대응으로 오버투어리즘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예방도 가능하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관광객 수 제한, 관광세 도입 등 해외 도시들이 취한 조치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나온 극약 처방인 만큼 국내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이다. 자칫 관광시장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는 규제를 도입하기보다 지역 관광 인프라와 수용 능력에 맞춘 지속 가능성 확보에 무게를 둔 관광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기 성과 달성을 위한 관광객 유치 일변도의 관광정책도 과감한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정광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박사는 “오버투어리즘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해결책을 찾기 쉽지 않을뿐더러 문제가 드러났을 땐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관광시장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국내 현실을 감안한 오버투어리즘 진단 기준과 가이드라인 마련 등 선제적인 조치 및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