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경영기법 이식…글로벌 명품가전社 변신"

87년된 호주 소형가전업체 '브레빌'은 어떻게 부활했나

"경쟁사 쫓는 대신 잘하는것 하자"
LG 부사장 출신 클레이턴 CEO, 취임 후 주방가전에만 집중 전략
디자인팀 키워 기술팀과 접목

"집에서 최고를 요리하게 하라"
스타 셰프·바리스타 챔피언과 협업
실생활과 밀접한 제품만 개발…커피머신·피자오븐 등 잇단 히트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호주 기업은 드물다. 많은 브랜드가 고배를 마셨다. 최근 4~5년 사이 세계 가전업계가 주목하는 기업이 등장했다. 호주 가전업체 브레빌이다.

10년 전 닥친 경영위기 때 브레빌은 가전 분야에서도 ‘가장 험한 정글’로 통한 주방용 소형 가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한우물’만 파며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5300억원, 이익은 700억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8.1%, 9.7% 늘었다. 5개국에 불과했던 수출국은 5년 만에 74개국으로 급증했다.브레빌의 도약을 이끌고 있는 짐 클레이턴 최고경영자(CEO·사진)를 지난 1일 시드니의 브레빌그룹 본사에서 만났다. 미국 출생 변호사로 실리콘밸리와 사모펀드에서 일한 그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는 LG전자에서 신사업발굴을 담당하기도 했다. 클레이턴 CEO는 “한국 기업에서 글로벌 경영 노하우를 배웠다”며 “브레빌이 가야 할 길도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위기 때 핵심 인재 10배 늘려

브레빌은 1932년 라디오 회사로 시작했다.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엔지니어가 모여 창업했다. 지금도 신제품 출시 기간은 평균 2년 안팎. 8~10년이 걸리는 제품도 있다. 6개월~1년이 걸리는 다른 회사보다 신제품 개발 기간이 길다.호주 내수 시장에서 선빔과 수십 년간 경쟁해온 브레빌에 2005년 이후 위기가 찾아왔다. 값싼 미국과 중국 가전이 밀려들었고, 선빔도 치고 올라왔다. 클레이턴 CEO는 “경쟁자를 쫓는 대신 잘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며 “주방용 가전만 만들고 우리 DNA인 ‘기술력’을 최고로 포장할 수 있는 디자이너를 대거 영입했다”고 했다. 2010년만 해도 6~7명인 제품 디자인 팀은 현재 60~70명으로 늘었다. 디자이너들은 엔지니어와 한 팀이다.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한다. 브레빌의 핵심 제품군은 커피 기기와 주서, 블렌더, 그릴, 오븐 등이다.

디자인에서 생산까지 ‘통합 경영’

브레빌의 제품 개발자들은 연구실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주방에서 일한다. 클레이턴 CEO는 “우리는 가격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문제’를 따라 움직인다”고 했다. 보통 가전 회사는 신제품을 구상할 때 백화점 가전 매장을 둘러본다. ‘200달러짜리 토스터가 시장에 없다’고 판단되면 개발팀을 찾아가 “200달러짜리 토스터 하나 만들어달라”고 한다.브레빌 개발팀은 몇 시간이고 일반인이 주방에서 요리하는 장면을 본다. 그 과정에서 개선할 부분과 필요한 기능 등을 발견한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티 메이커’도 이 같은 과정으로 탄생했다. 클레이턴 CEO는 “물의 온도와 우려내는 시간에 따라 차 맛이 달라지는데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면서 “끓는 물의 온도를 녹차, 홍차 등으로 나눠 설정할 수 있고 적정 온도가 되면 찻잎을 자동으로 넣었다 빼는 기능을 갖췄다”고 했다.

“미쉐린을 집에서 즐기게 하라”

브레빌의 원칙은 하나다. ‘집에서 단 한 번이라도 최고를 요리하게 하라’다. 이를 위해 미쉐린 스타 셰프, 바리스타 세계 챔피언들과 협업한다.브레빌이 시장을 처음 놀라게 한 건 2012년 내놓은 반자동 커피 기기 ‘바리스타 에스프레소’였다. 듀얼 보일러와 특수 모터, 직관적 디자인의 터치 스크린이 적용돼 가격은 기존 동급 기기의 4~5배지만 무섭게 팔렸다. 현재 브레빌 전체 매출의 약 80%가 커피 기기에서 나온다. 브레빌은 국내에서도 2013년 공식 론칭돼 첫해 315대가 팔렸고, 지난해 커피 기기, 주서 등 전 제품이 6589대 판매됐다. 매출 증가율은 5년간 600%가 넘는다.

커피 기기의 성공은 다른 가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미쉐린 3스타 셰프 헤스턴 블루먼솔과 협업해 내놓은 소형 피자 오븐은 미국 아마존, 윌리엄소노마 등에서 연말연시 ‘히트상품’ 대열에 올랐다. 이탈리아 전통 방식 그대로 400도 고온에서 2분 안에 피자를 만드는 독보적 기술을 구현해 호평받았다.

클레이턴 CEO는 “한국인에게 김치냉장고가 필수가전인 것처럼 미국인의 식생활을 파고드는 제품 개발에 주력한 결과”라며 “애플, 다이슨처럼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드니=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