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枯死 위기' 르노삼성 협력사들 "이대론 공멸…정부가 파국 막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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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치닫는 르노삼성 사태르노삼성자동차의 주요 협력업체 대표가 오는 27일 긴급 대책회의를 연다. ‘르노삼성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이러다 모두 망할지 모른다’는 공멸 위기감이 커지자 생존 대책 마련에 들어간 것이다. 4개월간 이어진 르노삼성 노동조합의 부분파업으로 300곳(1차 협력사 기준)에 달하는 협력업체의 공장 가동률은 60%대로 떨어졌다. 프랑스 르노그룹 본사가 부산공장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 후속 물량을 주지 않으면 수탁생산 계약이 끝나는 9월 이후엔 공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협력사들 사이에선 “정부가 나서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7일 긴급 대책회의…정부에 노사 중재 요청키로
"노사갈등 더 이어지면 끝장"
노조 4개월 부분파업에 공장 가동률 60%대로 '뚝'
'돈줄'도 말라 엎친 데 덮쳐
후속 신차 배정 못 받으면 9월 이후 공장문 닫을 판
한계 다다른 협력사들협력업체 모임인 르노삼성수탁기업협의회를 이끄는 나기원 회장(신흥기공 대표)은 12일 “최근 르노삼성 노사에 갈등을 수습하고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호소문을 전달했지만 소용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스스로 살길을 찾기 위해 27일 협력사 대표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르노삼성 협력사들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 등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 협력사 대표는 “노사 갈등이 더 길어지면 르노삼성뿐만 아니라 협력사도 공멸할 수밖에 없다”며 “르노삼성의 노사 갈등을 중재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하는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르노삼성 협력업체들은 말라죽기 직전이다. 자동차산업 위기가 장기화하는 와중에 르노삼성 노조가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간 28차례(104시간) 파업하면서 협력사들의 공장 가동률이 60%대로 떨어졌다. 협력업체 A사 대표는 “올 들어 르노삼성의 부분파업이 반복되는 날마다 공장을 세웠다”며 “하루 8시간 기준으로 따지면 잔업 없이 1주일에 사흘만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르노삼성이 로그를 대체할 신차 물량을 따내지 못하면 9월 이후 협력사가 줄도산 위기에 내몰릴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로그는 지난해 부산공장 자동차 생산량(21만5809대)의 절반가량(10만7262대)을 차지했다. B사 대표는 “로그 뒤를 잇는 후속 물량이 없으면 협력사들의 공장 가동률은 30~40%대로 곤두박질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상 자동차 공장 가동률이 80%를 밑돌면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며 “가동률이 50~60% 아래로 떨어지면 공장을 돌릴수록 빚만 떠안는 구조가 된다”고 설명했다.정부도 르노삼성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만 직접 개입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개별 기업 노사 문제에 개입하면 상황이 더 꼬일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연 생산량이 16만 대 수준으로 떨어지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점을 노사가 잘 알기 때문에 조만간 절충점을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산 지역경제도 ‘휘청’
업계에선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관측도 나온다. 르노삼성의 노사 갈등 장기화로 시중은행뿐 아니라 지방은행마저 어음 할인이나 기존 대출 상환 만기 연장을 거부하는 등 ‘돈줄’을 죌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은행들이 신규 대출은 고사하고 기존 대출 상환을 앞당겨줄 수 있느냐고 압박하는 분위기”라며 “대부업체를 찾아가 손을 벌려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부산 지역 수출액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르노삼성이 흔들리면서 지역 경기도 얼어붙고 있다. 부산공장이 있는 신호산업단지와 녹산산단 인근은 직격탄을 맞은 분위기다. 심재운 부산상공회의소 조사연구본부장은 “한진중공업에 이어 르노삼성마저 휘청이면서 지역 경제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부산·경남지역에서 르노삼성과 협력사 300곳의 직간접 고용 인력은 5만 명 안팎인 것으로 추산된다.
장창민/부산=김태현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