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예산은 줄이고 '꾸미기 사업'은 늘린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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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노후화로 고장·연착 사고 잦은데…12일 오전 8시께 서울역 승강장. 지하철 1호선 열차가 보조전원장치 고장으로 멈춰섰다. 열차 운행도 5분간 중단됐다. 출근길을 재촉하던 승객들은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서울 지하철이 잔고장으로 멈춰선 사고는 이날뿐이 아니다. 지난 11일, 9일, 8일, 7일에도 교대역, 아현역, 가산디지털단지역 등에서 모두 한두 차례씩 차량 고장, 신호장애 등으로 열차 운행이 지연됐다. 설 연휴 이후에만 여섯 차례나 된다. 사실상 매일 발생한 셈이다.
시민 안전엔 소홀
서울 1~8호선 3551량 중 20년 이상 된 노후 차량 1929량
市 "노후 전동차 410량 교체비용, 7846억 필요하다" 산출하고도
올 예산 94억 삭감 120억 배정…노후역사 재투자도 163억 '싹둑'
치적 사업만 열중?
지하철 역사 상업광고 줄이고
문화광고 위주로 대체하는 문화예술철도 사업 예산 11배↑
시민들 사이에서는 “지하철 지연·연착이 일상이 돼버렸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사고가 잦은 2호선에 대해서는 “2호선이 또 2호선했다(고장났다는 의미)”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그러나 서울시 대책은 정확히 거꾸로 가고 있다. 노후 전동차 교체는 외면한 채 유지·보수 예산은 줄이고 ‘역사(驛舍) 꾸미기’ 예산만 대폭 늘렸다.노후 전동차 교체 예산은 턱없이 부족
잦은 지하철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차량과 설비의 노후화가 꼽힌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1~8호선 3551량 가운데 20년 이상 된 노후 차량은 1929량(54%)으로 절반이 넘는다. 노후도가 심각한 수준인 26년 이상 차량도 582량(16.3%)이나 된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차량과 시설의 노후화에 따른 잔고장이 지하철 지연·연착을 일으키는 원인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동차 노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예산은 계속 줄고 있다. 서울시는 2022년까지 기대수명 25년이 경과됐고, 정밀진단 결과에서 퇴역이 결정된 전동차 410량을 교체하는 데 총사업비 7846억원(시 예산 1023억원, 서울교통공사 6823억원)이 필요하다고 산출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올해 배정한 예산은 지난해보다 94억원 삭감된 120억원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올해 지하철 1~4호선 노후 역사 재투자에 지난해보다 163억원 삭감된 667억원을 편성했다. 도시철도를 관장하는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의 올해 예산안도 2조7426억원으로 지난해 예산 3조7392억원보다 26.7%(9966억원) 줄어들었다. 복지 예산이 11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지하철을 운영하는 주체인 서울교통공사는 해마다 5000억원가량의 적자를 낼 정도로 재정이 열악하다. 서울시는 올해 서울교통공사 전출금으로 지난해 예산보다 2078억원 삭감한 2976억원을 편성했다.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고속철도·산업연구팀장은 “도로 유지·보수 비용을 버스 회사가 아니라 서울시가 부담하듯, 지하철 인프라를 유지·보수하는 데도 서울시가 더 투자해야 한다”며 “제때 예산을 확보하지 않으면 지하철 지연·연착은 더 잦아지고 승객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문화예술철도사업 예산 19억→217억서울시는 올해 이른바 ‘문화예술철도’ 조성 사업에 예산을 217억원 편성했다. 지난해 19억원에서 11배 늘어났다. 테마역사 조성 등에 쓰일 예산이다.
문화예술철도 사업엔 역사 내 상업광고를 문화예술 광고로 바꾸는 것도 포함된다. 박원순 시장은 2022년까지 성형외과 광고 등 지하철 상업광고를 20~30%가량 줄이고 이를 문화광고로 대체하겠다고 지난해 10월 발표했다.
포기해야 하는 광고수익까지 포함하면 문화예술철도 조성의 기회비용은 더 커진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한 해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광고수익은 440억원가량이다. 2017년 개통한 경전철인 우이신설선은 서울시가 100% 문화예술 철도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상업광고를 아예 배제했다.하지만 우이신설선의 운영권은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등이 출자한 ‘우이신설경전철 주식회사’가 갖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는 시 예산 16억원(올해 기준)으로 광고 사업 손실금을 메워주고 있다. 시민 안전과 직결되는 인프라의 유지·보수보다 눈에 보이는 치적 사업에 더 신경 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