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양승태 재판…'재판거래' 검찰논리 조목조목 반박

"상고법원, 위법 감수한 목표 아냐" 주장…징용소송 개입 정황도 전면 부인
검찰 "대법원장 지시 따른 것" vs 양승태 측 "재판 관여할 지위 아니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거래'를 비롯해 검찰 공소사실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 논리를 빠짐없이 반박한 것으로 13일 전해졌다.검찰 수사와 영장심사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제징용 소송 개입 혐의의 정황 증거인 청와대 비서실장 주재 회의를 사전에 전혀 몰랐고, 검찰이 재판거래 배경으로 본 상고법원 도입 역시 "위법을 감수할 정도의 목표가 아니었다"고 밝히는 등 한 치 양보 없는 진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이뤄지는 전직 사법부 수장의 형사 재판은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이 불꽃 튀는 공방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이 본격적인 재판 준비에 들어간 가운데 주요 쟁점과 양쪽이 법정에서 펼칠 주장을 전반적으로 짚어봤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검찰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양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정부와의 거래 수단으로 삼았다고 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소송을 지연시키고, 일본 전범 기업에 배상책임이 없다는 쪽으로 기존 대법원판결을 뒤집는 데 직접 개입했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검찰은 일본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압수수색해 김앤장 송무팀을 맡은 한상호 변호사와 양 전 대법원장의 면담결과가 담긴 내부 보고문건을 물증으로 확보했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은 이 같은 검찰 주장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열린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2012년 파기 환송된 강제징용 소송 판결에 대해 본인이 심리한 사건이 아니라 이후의 소송 경과나 이와 관련한 정부 측 반응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공관에서 차한성·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을 소집했다는 이른바 '소인수 회의'에 대해서도 "처장들로부터 사전 보고를 받지 않아 소인수 회의가 존재했다는 걸 몰랐고, 박병대로부터 회의에 다녀왔다는 정도의 얘기를 사후적으로 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당시 회의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며, 당연히 회의 내용에 따라 대응 방안을 검토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김앤장 한상호 변호사를 만난 부분도 반박하고 있다.

개인적 인연 때문에 한 변호사와 짧은 '환담'은 했지만,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한 적이 없고, 김앤장이 일본 기업을 대리한다는 사실도 몰랐다는 것이다.

또 재상고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토론은 연구관의 검토보고서가 소부에 제출된 이후인 2016년 말께 시작돼 그때부터 본인도 사건에 관여했지 그 이전까지는 전혀 관여할 지위에 있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2013년∼2015년 한 변호사에게 이 사건을 전합에 회부하겠다고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대법원에 재판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민사소송규칙을 고친 것도 "외교부의 의견 제출 의향이 규칙 개정의 한 계기가 됐을지는 몰라도, 외교부 요청을 들어주기 위해 무리하게 규칙을 개정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고심을 충실히 진행하기 위해 행정처 차원에서 이전부터 제도 도입을 논의해왔고, 외교부가 의견 제출 의향을 밝힌 시기(2013년 9월)와 실제 대법관 회의에서 규칙 개정을 결정한 시기(2015년 1월)도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주장이다.

법관의 해외 파견과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 역시 별개 사안이라는 게 양 전 대법원장 측 입장이다.
◇ "재판거래 동기는 상고법원" vs "위법 감수할 목표 아니다"
검찰은 강제징용 소송 등 여러 재판에 양 전 대법원장이 개입하려 했던 핵심적 동기를 '상고법원 도입'에서 찾았다.

상고법원 추진 과정에서 편의를 제공받을 뜻에서 징용소송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가 큰 관심을 두는 재판을 '관리'해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 당시 "이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긴 했으나 위법한 행위를 하면서까지 이뤄야 할 목표는 아니었다"고 변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상고법원 도입이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을 지키기 위한 정책이라고 봤지만,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상고심의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사법정책자문위원회에서 제안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원장의 재판개입 의혹이 불거진 또 다른 사건은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정지 사건이다.

검찰은 당시 대법원이 2014년 9월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 정지 처분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재항고를 접수한 뒤 무리하게 이를 뒤집으려 했다고 본다.

복수의 재판연구관들이 '재항고 기각' 의견을 보고했지만, 검토를 반복하다 심리불속행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기간을 넘겨 이듬해 원심을 파기하고 전교조를 다시 법외노조로 되돌렸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은 영장심사에서 "청와대가 집행정지 재판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은 기억이 없고, 재항고 사건에 행정처가 개입했다는 내용도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면담에 대비해 만들어진 문건에 전교조 법외노조 집행정지 사건이 '협력사례'로 기재된 데 대해선 "어떻게 작성됐는지 경위는 아는 바가 없고, 면담에 그 문건을 가져가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양 전 원장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의 형사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두고도 "원세훈 사건과 관련한 청와대와 행정처 간의 논의 내용이나 관련 보고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검찰 "핵심 혐의는 직권남용" vs 양승태 "법리적으로 죄 안 돼"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검찰이 본인을 기소하면서 적용한 핵심 법리인 직권남용 혐의가 법리적으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한다.

법원의 사법행정은 독립적 기관인 법원행정처가 주로 담당하고, 일반적 업무에 대해 대법원장과 행정처장 등 행정처 직원들 사이에 지시·보고가 이뤄지는 상시적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국가공무원법과 법원조직법 등을 근거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각급 법원장들에게 소속 법관의 '재판사무'에 대해서도 직무감독권을 보유했다고 해석했다.

이런 직무감독권은 제한적으로 행사해야 함에도 부적절하게 개입해 직권을 남용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사법부에는 법관의 재판 독립을 해칠 상하관계가 없고, 재판에 대한 직무상 명령권도 없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대부분 공소사실이 '검토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것으로,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불법 사찰 혐의에 일부 무죄 선고를 받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1심 판결을 제시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마찬가지로 검찰의 공소 제기가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