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역전세난' 놓고 오락가락하는 정부

강경민 금융부 기자 kkm1026@hankyung.com
“현재로선 ‘역전세난’과 ‘깡통전세’에 대한 종합대책은 준비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태조사도 안 된 상황이어서 대책을 마련할 단계가 아닙니다.” 최근 만난 금융위원회 관계자가 기자에게 들려준 얘기다.

지난해부터 지방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역전세난과 깡통전세 현상이 수도권으로 확산되면서 금융시스템과 경제 전반의 위기로 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현상으로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면서 관련 부처들은 하나같이 “실태조사를 먼저 한 뒤 대책이 필요한지 검토하겠다”고 입을 모은다.금융위를 비롯한 정부 부처에선 언론이 깡통전세와 관련해 과잉 보도하고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일각에선 지난해 ‘9·13 주택시장 안정대책’ 당시 나온 대출규제를 완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음모론도 제기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깡통전세 현상을 공식석상에서 올해 가계부채 리스크 중 하나로 지목한 당사자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다. 최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열린 가계부채관리 점검회의에서 “국지적인 수급 불일치 등으로 전세가가 하락해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며 “정부와 감독기관, 금융회사 모두 긴장감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까지 부실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시장은 정부가 깡통전세 현상을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금융위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하지만 관계 부처들은 아직까지 깡통전세 실태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최 위원장의 발언 이후 시장의 불안은 커지고 있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정부는 별 움직임이 없다. 전형적 ‘나토(NATO: no action talk only)’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위기 징후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대책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전달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책은 타이밍과 일관성이 생명이다. 역전세난 관련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면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설명하면 된다. ‘걱정할 필요 없다’며 뒷짐만 지고 있는 건 정부의 직무유기와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