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 폭소 유도하고 때로는 거칠게 응수한 '토론전용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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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개발한 '프로젝트 디베이터' 인간 토론 챔피언과 배틀“정부가 유치원 보조금을 지급하면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청소년 범죄율도 크게 낮출 것이다.”(IBM의 토론 전용 인공지능(AI) 컴퓨터 ‘프로젝트 디베이터’)
100억개 문장 익힌 토론 AI, 농담도 하며 마치 사람처럼 토론
"당신은 기계와 대결이 처음일 것…미래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
청중이 매긴 최종 점수는 '인간 승'
"누가 지식을 풍성하게 해줬냐"엔 AI 60%, 인간 20% 지지받아
“보조금 지급이 이뤄지더라도 모든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욱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개개인에게 정부 자금을 써야 한다.”(2012년 유럽 토론 챔피언 하리시 나타라얀 씨)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IBM이 개발한 토론 전용 AI 컴퓨터 프로젝트 디베이터가 ‘정부의 유치원 보조금 지급’이란 주제로 인간 토론 챔피언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예르바부에나센터에서 열린 ‘IBM-인텔리전스 스퀘어드’ 토론 행사에서다.
정부 유치원 보조금 지급 놓고 공방
700여 명의 청중이 매긴 최종 점수는 인간 챔피언 나타라얀의 승. 토론 전 나타라얀의 입장(유치원 보조금 지급 반대)을 지지하던 청중은 13%에 불과했으나 토론 뒤 30%로 17%포인트 높아졌다. 그러나 “둘 중에 누가 더 당신의 지식을 풍성하게 해줬느냐”는 질문에는 프로젝트 디베이터(60%)가 나타라얀(20%)보다 높게 나타났다.
토론 주제는 행사 15분 전 양측에 전달됐다. 발표시간은 각각 10분. 4분간 발언하고, 4분간 서로의 의견을 반박한 뒤 2분간 마무리하는 방식이었다.
프로젝트 디베이터는 농담도 하며 마치 사람처럼 토론을 이어갔다. 나타라얀에게 “저는 인간과 대화하며 많이 배웠지만 당신은 기계와의 대결이 처음일 것”이라며 “미래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단조로운 목소리는 설득력 떨어져
나타라얀이 “중산층에게 정부 자금을 지원할 더 나은 길이 많다”고 하자 프로젝트 디베이터는 “당신 집 앞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구걸하는 장면을 보고 싶은 것이냐”고 반박했다. 이어 “정부 자금을 지원할 더 중요한 곳이 있다는 당신의 말은 논점을 벗어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타라얀은 “정부 예산이 모두 좋은 곳에 쓰일 거라는 그녀(AI는 성인 여성의 목소리)의 가정은 착각”이라며 “그런 세상에 살고 싶지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고 현실론을 강조했다.다양한 몸짓을 더하며 청중을 설득한 인간 챔피언은 단조로운 목소리의 프로젝트 디베이터보다 ‘사람’을 끄는 힘이 더 컸다. 나타라얀은 토론을 마친 뒤 “프로젝트 디베이터는 정보를 맥락화하고, 탐색 결과에서 핵심을 끌어왔다”며 “문장을 조합하는 실력이 놀랄 만큼 강력했다”고 치켜세웠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지혜의 돌기둥 닮아
프로젝트 디베이터는 세로로 길쭉한 모양의 AI 컴퓨터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류에 문명의 지혜를 가르쳐준 검은 돌기둥 ‘모노리스’를 닮았다.
IBM은 프로젝트 디베이터가 신문과 학술자료 100억 개의 문장을 기반으로 지식을 쌓았다고 설명했다. 인간과의 토론을 통해 인류의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키워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로 창업 108년째를 맞은 IBM은 그동안 ‘인간 대 컴퓨터’의 대결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해왔다. 1997년 세계 체스 챔피언을 이긴 슈퍼컴퓨터 ‘딥블루’와 2011년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을 꺾은 컴퓨터 ‘왓슨’도 IBM의 제품이다.
지니 로메티 IBM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12일 IBM의 연례 콘퍼런스 ‘싱크(Think) 2019’에서 “AI가 앞으로 인류의 모든 직업 환경을 바꾸게 될 것”이라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변혁)이 산업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로메티 회장과 대담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IBM 왓슨을 활용한 채팅로봇 ‘버디’를 소개했다. 그는 “AI, 클라우드, 블록체인 기술로 금융 서비스를 혁신하고 있다”며 “지금은 창을 사용하다가 화약으로 옮겨 간 17세기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안정락 특파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