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3·1 운동 위해 흘린 '피와 눈물'…당신들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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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열전“만인이 죽어 백만인을 살리는 방법이 있다면 죽음도 불사할 것이오. 만인을 죽이면 만인의 피가 백만을 물들이고, 백만을 죽이면 백만의 피가 천만을 물들일 것이오. 그럼 결국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소?”
조한성 지음 / 생각정원 / 336쪽│1만6000원
1919년 3월 6일 청주경찰서 취조실. 너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쳐도 좋으냐는 조선인 경찰에게 인종익(49)은 이렇게 말했다. 인종익은 천도교가 운영하던 보성고등보통학교 부설 인쇄소(보성사) 사무원이었다. 3·1 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전날 독립선언서 뭉치를 품에 안고 서울을 출발해 전주, 이리에 전달한 뒤 3월 2일 청주에서 일경에 붙잡혔다.체포 당시 그의 몸에서 나온 선언서는 200여 장. 경찰의 무자비한 구타와 고문에도 전주, 이리에 들른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그는 이틀이 지나서야 총 2000장의 독립선언서 중 1800장 정도를 천도교 전주교구실에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선언서가 전주에 배포될 수 있도록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체포 후 1년6개월 가까이 수형생활을 하고 이듬해 8월 만기 출옥한 그의 이후 행적은 어디에도 없다. 일제가 만든 그의 신상카드엔 사진도 남아 있지 않다.
《만세열전》은 100년 전 이 땅에 넘쳐흘렀던 거대한 만세운동의 물결을 기획하고 전달하고 실행한 분들의 이야기다. 한국현대사 연구자인 저자는 3·1운동은 해외 그룹과 국내 종교 그룹, 학생 그룹 등 다양한 그룹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진 대규모 민족운동이었으며, 일회성 시위가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연이어 벌어진 커다란 흐름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이 책에서는 운동 자체의 역사적·사회적 의미보다는 거대한 서사 뒤에 가려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누가 이 운동을 기획했고, 전국 방방곡곡에 소식을 알렸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만세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누구일까.책에는 해외에서 조선 독립운동의 씨앗을 뿌렸던 여운형과 신한청년당, 3·1운동을 기획하고 이끌었던 천도교와 기독교 지도자 손병희와 이승훈, 독립운동을 일회성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며 학생들을 이끌었던 지도부 등의 기획자들 이야기가 생생하다. 손병희 등 천도교 지도부가 별도의 독립운동을 준비 중이던 기독교와 연합하는 과정은 막전막후 드라마처럼 숨가쁘다.
독립선언서 인쇄는 천도교가 맡고, 배포는 양측이 골고루 나눠 맡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보성사 사장 이종일이 철저한 보안 속에서 2월 27일 밤 2만1000장가량의 선언서를 인쇄했다. 인쇄 전 조판은 최남선이 경영하는 신문관에서 맡았으나 조판의 짜임이 좋지 않아 보성사에서 다시 조판하면서 두 가지 판본의 선언서가 세상에 남게 됐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기존에 많이 조명받은 민족대표 33인 외에 이 운동에 참가했으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 고민과 갈등, 결심과 희망 등을 생동감 있게 재구성한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지방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던 인종익, 독립선언서와 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을 민가에 배포하고 만세 시위에 참가한 혐의로 열아홉 나이에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배재고보 2학년 김동혁은 처음 소개되는 인물이다. 러시아영사관에 봉함 편지를 전달한 혐의로 체포된 오흥순(19), 이종일과 함께 조선독립신문을 제작했던 천도교월보 주필 이종린, 조선독립신문 사장으로 이름을 올렸던 보성법률상업학교 교장 윤익선, 신문 제작에 참여한 경성서적조합 서기 장종건….조선독립의 열망으로 지하신문 ‘각성호회보’를 만들었던 노끈장수 김호준, 열 살짜리 아이들이 아버지를 따라 깃발을 들고 만세를 부르며 행진한 3·1운동의 최연소 시위대 사연은 읽는 순간 울컥 올라온다. 덕수궁파출소의 순사보였던 정호석은 3월 5일 병을 핑계로 휴가를 냈다. 손가락을 물어뜯어 광목에 태극기를 그린 그는 근처 학교에 들어가 만세삼창을 부른 뒤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의 열 살짜리 딸과 수십 명의 여자아이가 만세를 부르며 따라나섰다.
저자는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복원하기 위해 당시 작성된 경찰과 검찰의 심문조서, 예심 심문조서, 공판시말서 등을 훑으며 고증했다. 이를 토대로 대화체로 복원한 당시 상황은 숨기려는 쪽과 파헤치려는 쪽의 치밀하고 끈질긴 ‘밀당’(밀고 당기기)을 보여준다. 일제가 만든 신상카드에 실린, 머리를 빡빡 깎고 죄수복을 입은 채 찍은 사진이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