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리모델링…5년째 신규 착공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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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보다 규제 적지만 '시범단지'도 설계업체 못구해 사업 제자리주택 리모델링 사업이 잇따른 규제 탓에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리모델링은 준공 15년 지난 아파트가 전면 철거 대신 기존 골조를 유지한 채 건물을 고쳐 쓰는 사업이다. 공사 기간이 빠르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재건축 단지에 적용되는 규제를 받지 않아 그간 재건축 사업 대안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설계변경 요건이 까다로워졌고 정부의 제도 개선안 검토가 지연되고 있어 당분간 신규 사업장이 나오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 '리모델링 규칙' 개정
설계 변경땐 총회 의결 거쳐야
안전성 검토에 전문기관 참여
업계 "신규 추진 더 어려워질 듯"
잇따르는 규제 강화국토교통부는 15일 공동주택 수직증축 리모델링 절차와 관련한 ‘주택법 시행규칙’과 ‘하위지침’ 개정안을 마련해 다음달 26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수직증축 리모델링 사업을 벌이는 단지가 2차 안전진단 이후 최초 설계안을 바꾸려고 할 경우엔 조합원 총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설계변경에 따른 추가 분담금 증감 가능성을 따져 조합원들이 의사 결정을 하라는 취지다. 국토부 관계자는 “1차 안전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짠 리모델링 설계가 2차 안전진단을 받고 바뀌었을 때 입주민들이 그에 따른 비용 증가분을 나중에야 알고 부담하는 사례가 있어 이를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하위지침은 수직증축 리모델링 관련 사업 방식을 구체화하고 안전성 검토 기관과 전문가 참여를 의무화했다. 1·2차 안전진단제도는 시험 방법과 계산 방법 등에 대한 내용을 구체화했다. 2차 안전진단 현장시험에는 안전성 검토 전문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나 한국시설안전공단이 참여해야 한다. 안전진단기관은 구조설계 내용과 현장시험 결과를 대조하고 다른 내용이 있을 경우 리모델링 허가권자 등에게 알려야 한다. 지반전문가 참여도 의무화됐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각종 규정이 강화되면서 리모델링 사업 추진이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새 규제가 리모델링 조합원 재산권 보호에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리모델링 사업은 재건축과 달리 단지 이주와 부분철거 후 2차 안전진단을 받아서다. 2차 안전진단 결과를 반영한 설계변경은 입주민들이 이미 이주한 뒤 이뤄지므로 추가 부담금이 고지된다고 해도 조합원이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 강남권의 한 리모델링 추진위 관계자는 “이미 아파트 일부를 부순 뒤인데 시공자가 제시한 추가 부담금을 부결시킬 수 있겠느냐”며 “새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가 사업 차질을 피하기 위해 초반부터 공사비를 상당폭 올려잡고, 이 때문에 사업성 설득력이 떨어져 리모델링 신규 추진만 어렵게 하는 역효과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2014년 이후 ‘착공 無’
리모델링 사업지는 전국적으로 답보 상태다. 2014년 서울 청담동 ‘래미안 청담로이뷰(청담두산 리모델링)’, ‘청담 아이파크(청담청구 리모델링)’ 이후 착공한 단지가 한 곳도 없다. 규제가 많고 행정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아 사업 속도를 낼 수 없어서다.입지가 좋은 대규모 단지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시가 ‘서울형 리모델링 사업’으로 지원 중인 시범 단지조차 시공사 입찰에 설계업체들이 붙지 않아 연이어 유찰됐다. 중구 ‘남산타운(3118가구)’은 설계업체 입찰이 유찰돼 수의계약을 검토 중이다. 송파구 ‘문정시영·문정건영’은 총 1800가구가 넘는 대규모 리모델링 단지이지만 유찰로 설계업체를 찾지 못했다.
자체 사업을 추진 중인 곳도 마찬가지다. 작년 말엔 용산구 한가람·코오롱·강촌·대우·우성 등 5개 단지 5000가구 통합 리모델링이 무산됐다. 강남구 ‘청담건영’은 작년 말 두 차례 유찰 끝에 수의계약 방식으로 시공사를 선정했다.
여기다 수직증축 리모델링 활성화의 열쇠로 꼽히는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 결정을 정부가 미루면서 리모델링 사업 추진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내력벽은 건물 하중을 견디기 위해 만든 벽이다. 내력벽을 철거할 수 있으면 3베이(방 2개와 거실 전면 배치)를 4베이(방 3개와 거실 전면 배치)로 만드는 등 다양한 평면을 구성할 수 있다. 국토부는 당초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를 다음달 중 결정할 방침이었으나 관련 용역이 지연돼 연말께로 결정을 연기했다. 한 도시정비사업체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노후 단지의 재건축만 부추기는 꼴”이라며 “불필요한 규제는 버리고 미비한 행정절차를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한데 정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정부가 안전진단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제도적 발판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