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국경장벽 건설용' 국가비상사태 선포… 혼돈의 美정국[주용석의 워싱턴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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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멕시코 접경지 국경장벽 건설을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의회가 승인한 장벽 건설예산(13억7500만달러)이 자신이 요구한 57억달러에 훨씬 못미친다는 이유로 위헌 논란을 무릅쓰고 ‘비상대권’을 동원한 것이다. 야당인 민주당이 “지금은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다”며 강하게 반발하면서 정국은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모두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뒤통수 맞은’ 민주당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멕시코 국경 지역에서 벌어지는 마약, 폭력조직, 인신매매 등은 미국에 대한 침략”이라며 장벽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곧바로 국가비상사태 선포문에 서명해 상·하원에 전달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국방부 등의 예산과 군대를 동원해 장벽 건설을 강행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지만 상원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어 의회가 국가비상사태를 막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장벽 예산으로 의회가 승인한 13억7500만달러 외에 군 관련 건설사업 예산 36억달러, 마약단속 예산 25억달러, 재무부의 자산몰수 기금 6억달러 등 총 80억달러 가량을 동원할 수 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 3140㎞ 중 기존에 펜스 장벽이 설치된 구간은 1040㎞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벽 예산으로 빈 구간을 메우거나, 기존 펜스 장벽을 콘크리트 장벽으로 바꿀 계획이다. 13억7500만달러로 지을 수 있는 장벽은 55마일(약 88㎞) 정도에 불과하지만 80억달러를 투입하면 대략 320마일(약 512㎞)에 걸쳐 장벽을 올릴 수 있다.
민주당은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지난달 25일 3주간 셧다운을 중단하는 ‘시한부 셧다운 종식’에 합의했다. 2월15일 자정까지 장벽 예산을 합의 처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57억달러 중 13억7500만달러만 반영하는 예산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야가 합의한 예산안에 서명하는 동시에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버렸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펠로시 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성명을 통해 “대통령의 행위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헌법에 부여한 의회의 배타적인 돈지갑(예산) 권한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성토했다. 또 “의회는 의회에서, 법원에서, 대중 속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헌법적 권한을 지킬 것”이라고 ‘전방위 투쟁’을 선언했다.
◆트럼프의 ‘2020 재선’ 승부수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의 반발과 논란을 무릅쓰고 ‘장벽 건설용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건 2020년 대선을 앞둔 승부수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지지층을 붙잡아두기 위한 카드로 장벽만한게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방송이 지난달 성인 남녀 9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경장벽을 둘러싼 여론은 반대가 52%로 찬성(45%)보다 많다. 하지만 이는 밖으로 드러난 여론이고 설문조사에 잘 잡히지 않는 ‘밑바닥 민심’은 어떨지 모른다. 게다가 트럼프 지지층은 찬성이 96%로 압도적이다. 반대 또는 모르겠다는 4%에 불과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별다른 성과 없이 펠로시 의장과 셧다운 종식에 합의하자 미 언론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완패”라는 분석이 잇따랐고, 보수층에선 트럼프 대통령을 ‘겁쟁이 대통령’이라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불리해지는 정국을 뒤집기 위한 노림수도 깔려 있을 수 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의 내통 의혹을 수사해온 로버트 뮬러 특검은 이날 폴 매너포트 전 트럼프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에 대해 최대 24년의 징역형을 구형해야 한다는 의견을 법원에 제시했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러시아 스캔들’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이민 문제와 직결된 장벽 건설을 밀어붙인 배경이다.◆위헌 논란 속 ‘정국 급랭’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로 끝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미국 헌법 1조의 9절7항은 입법부의 권한을 “국고는 법률이 정한 지출 승인 절차에 따라서만 지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CNN은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중대한 헌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런 비판을 고려한듯 기자회견에서 “과거 정부에서도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있었다”며 “소송도 예상한다. 대법원에서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역대 국가비상사태는 거의 대부분 대외 문제였다. 1979년 이란 인질 위기, 2001년 9·11 테러 직후 선포된 국가비상사태가 대표적이다. WSJ에 따르면 1976년 국가비상사태법 제정 후 지금까지 선포된 52건의 국가비상사태 중 국내 문제는 이번까지 모두 4번뿐이었다. 그나마 국내 문제도 1993년~1994년 대량파괴무기(WMD) 억제, 2009년 신종플루(H1N1) 대응처럼 초당적 이슈였다. 이번처럼 여야가 정면충돌하는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USA투데이는 “국가비상사태는 통상적이지만, 국경장벽 사유는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결국 소송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영리단체인 ‘퍼블릭 시티즌’은 국경장벽 건설 예정지 토지를 소유한 3명을 대리해 “트럼프 대통령과 국방부가 다른 목적으로 배정된 자금을 국경장벽 건설에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버티고 있는 캘리포니아주, 네바다주 등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고, 민주당 지도부는 이전부터 위헌 소송 제기 가능성을 경고해왔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 법사위원회는 청문회를 열기로 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가비상사태 관련 문서를 22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뒤통수 맞은’ 민주당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멕시코 국경 지역에서 벌어지는 마약, 폭력조직, 인신매매 등은 미국에 대한 침략”이라며 장벽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곧바로 국가비상사태 선포문에 서명해 상·하원에 전달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국방부 등의 예산과 군대를 동원해 장벽 건설을 강행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지만 상원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어 의회가 국가비상사태를 막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장벽 예산으로 의회가 승인한 13억7500만달러 외에 군 관련 건설사업 예산 36억달러, 마약단속 예산 25억달러, 재무부의 자산몰수 기금 6억달러 등 총 80억달러 가량을 동원할 수 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 3140㎞ 중 기존에 펜스 장벽이 설치된 구간은 1040㎞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벽 예산으로 빈 구간을 메우거나, 기존 펜스 장벽을 콘크리트 장벽으로 바꿀 계획이다. 13억7500만달러로 지을 수 있는 장벽은 55마일(약 88㎞) 정도에 불과하지만 80억달러를 투입하면 대략 320마일(약 512㎞)에 걸쳐 장벽을 올릴 수 있다.
민주당은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지난달 25일 3주간 셧다운을 중단하는 ‘시한부 셧다운 종식’에 합의했다. 2월15일 자정까지 장벽 예산을 합의 처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57억달러 중 13억7500만달러만 반영하는 예산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야가 합의한 예산안에 서명하는 동시에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버렸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펠로시 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성명을 통해 “대통령의 행위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헌법에 부여한 의회의 배타적인 돈지갑(예산) 권한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성토했다. 또 “의회는 의회에서, 법원에서, 대중 속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헌법적 권한을 지킬 것”이라고 ‘전방위 투쟁’을 선언했다.
◆트럼프의 ‘2020 재선’ 승부수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의 반발과 논란을 무릅쓰고 ‘장벽 건설용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건 2020년 대선을 앞둔 승부수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지지층을 붙잡아두기 위한 카드로 장벽만한게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방송이 지난달 성인 남녀 9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경장벽을 둘러싼 여론은 반대가 52%로 찬성(45%)보다 많다. 하지만 이는 밖으로 드러난 여론이고 설문조사에 잘 잡히지 않는 ‘밑바닥 민심’은 어떨지 모른다. 게다가 트럼프 지지층은 찬성이 96%로 압도적이다. 반대 또는 모르겠다는 4%에 불과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별다른 성과 없이 펠로시 의장과 셧다운 종식에 합의하자 미 언론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완패”라는 분석이 잇따랐고, 보수층에선 트럼프 대통령을 ‘겁쟁이 대통령’이라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불리해지는 정국을 뒤집기 위한 노림수도 깔려 있을 수 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의 내통 의혹을 수사해온 로버트 뮬러 특검은 이날 폴 매너포트 전 트럼프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에 대해 최대 24년의 징역형을 구형해야 한다는 의견을 법원에 제시했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러시아 스캔들’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이민 문제와 직결된 장벽 건설을 밀어붙인 배경이다.◆위헌 논란 속 ‘정국 급랭’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로 끝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미국 헌법 1조의 9절7항은 입법부의 권한을 “국고는 법률이 정한 지출 승인 절차에 따라서만 지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CNN은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중대한 헌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런 비판을 고려한듯 기자회견에서 “과거 정부에서도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있었다”며 “소송도 예상한다. 대법원에서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역대 국가비상사태는 거의 대부분 대외 문제였다. 1979년 이란 인질 위기, 2001년 9·11 테러 직후 선포된 국가비상사태가 대표적이다. WSJ에 따르면 1976년 국가비상사태법 제정 후 지금까지 선포된 52건의 국가비상사태 중 국내 문제는 이번까지 모두 4번뿐이었다. 그나마 국내 문제도 1993년~1994년 대량파괴무기(WMD) 억제, 2009년 신종플루(H1N1) 대응처럼 초당적 이슈였다. 이번처럼 여야가 정면충돌하는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USA투데이는 “국가비상사태는 통상적이지만, 국경장벽 사유는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결국 소송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영리단체인 ‘퍼블릭 시티즌’은 국경장벽 건설 예정지 토지를 소유한 3명을 대리해 “트럼프 대통령과 국방부가 다른 목적으로 배정된 자금을 국경장벽 건설에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버티고 있는 캘리포니아주, 네바다주 등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고, 민주당 지도부는 이전부터 위헌 소송 제기 가능성을 경고해왔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 법사위원회는 청문회를 열기로 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가비상사태 관련 문서를 22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