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이중섭 '나무와 달과 하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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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천재 화가 이중섭(1916~1956)은 6·25전쟁 때 부인과 자녀를 일본으로 보낸 뒤 종군화가로 활동하며 쓸쓸함과 외로움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전쟁이 끝나자 1953년 임시로 마련한 선원증으로 아이들과 부인을 보러 도쿄로 건너갔지만 불법체류자가 될까 두려워 6일간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1955년 8월 수도육군병원에 간염으로 입원한 그는 화가 박고석의 도움으로 서울 정릉에 거처를 정하고 삽화 이외에 소묘를 포함한 다수의 유화를 남겼다.
종이에 크레파스와 유화물감으로 그린 ‘나무와 달과 하얀 새’는 정릉에 머물며 완성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병원을 드나들던 비극적 현실에도 불구하고 흐릿한 눈 풍경에 앙상한 나뭇가지, 둥근달, 새들을 두터운 검은 선과 노란색이 물든 회색톤으로 채색해 희망찬 염원을 표현했다.일본에 거주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은은한 달빛에 물든 나뭇가지를 오가며 지저귀는 하얀 새들의 모습으로 응축했다. 다가올 죽음을 예견이나 한 듯 비교적 밝은 색채로 화면을 꾸렸고, 붓질 사이사이로 실낱 같은 희망을 담아내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정월 대보름(19일)에 이중섭의 찬란한 슬픔을 아우른 달 그림을 보며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해보면 어떨까. 이 그림은 지난달 작고한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애장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