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빚 최대 95% 없애준다지만…"성실히 갚는 서민들 역차별"

빚 더 탕감해주라는 정부

금융위, 채무감면 대폭 확대…내달부터 단계적 시행

빚 90일 이상 연체 땐 회수 가능한 원금 최대 30% 깎아줘
상대적으로 신용도 양호한 은행권 채무자도 탕감폭 확대
빠른 재기 돕는다지만, 대놓고 안갚는 '배짱 연체' 양산 우려
최종구 금융위원장(오른쪽)이 18일 전북 군산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한 개인채무자의 채무조정 방안을 상담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정부가 18일 내놓은 ‘개인채무자 신용회복지원제도 개선방안’의 핵심은 채무 감면비율을 지금보다 대폭 확대해 채무자의 빠른 재기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일반 채무자는 원금의 최대 70%까지, 기초수급자 등 취약계층은 채무의 최대 95%를 감면해주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하지만 은행 등 민간 금융회사들은 받을 수 있는 채무원금까지도 탕감해주면 도덕적 해이를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없는 살림을 쪼개 성실하게 꼬박꼬박 빚을 갚는 대다수 서민이 역차별을 당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반·취약계층 채무자 나눠 지원금융위원회는 이번 대책에서 취약계층이 아닌 일반 채무자에 대해서도 채무 탕감을 대폭 늘렸다.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한 일반 채무자를 대상으로 △연체 전부터 연체 초기 △연체 90일부터 채무 상각 전 △금융사의 채무 상각 이후 등 세 단계로 구분해 맞춤형 지원을 하기로 했다. 취약계층에는 상환불능 상태에서 특별감면이 가능한 단계가 하나 더 주어진다.

일반 채무자에 대해선 우선 오는 8월부터 아직 대출 연체 전이거나 연체 기간이 30일 이내인 다중채무자를 위한 신속 지원제도가 도입된다. 신청자는 최장 6개월간 이자만 내고 원금 상환은 유예받는다. 이후에도 정상적인 상환이 어렵다면 최대 10년간 원리금 장기 분할 상환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원 대상은 최근 6개월 이내 실업·무급 휴직·폐업을 한 사람과 3개월 이상 입원 치료를 해야 하는 환자 등이다.
연체기간이 90일 이상이며 금융사가 채권을 상각하기 전 단계에선 원금을 최대 30% 감면해주는 방안도 추진된다. 지금은 이자는 면제해주지만 원금을 감면해주지는 않고 있다. 채권 상각은 금융사가 채권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장부상 손실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 연체 후 6개월~1년이 지나면 상각 처리한다. 금융위는 다음달부터 금융사가 장부상 손실로 반영한 상각채권의 원금 감면율을 현행 30~60%에서 20~70%로 최대 10%포인트 상향하기로 했다.금융위는 이와 별도로 상환능력이 없는 취약채무자에 대한 특별감면제도를 도입한다. 지원 대상은 대출 원리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한 기초 생활수급자와 장애인연금 수령자, 중위소득 60%(올해 2인 가구 기준 월 174만원) 이하인 70세 이상 고령자, 10년 이상 1500만원 이하의 원금을 갚지 못한 장기소액연체자다. 이들이 신용회복위 채무 조정 후 3년간 감면받은 빚을 성실히 갚으면 남은 채무는 탕감해준다. 이렇게 되면 기초수급자와 장애인연금 수령자는 전체 채무의 최대 95%를 감면받을 수 있다.

은행권 채무자도 혜택 받아

금융위는 엄격한 심사를 통해 채무자의 고의 연체를 막겠다고 했다. 예를 들어 채무조정 신청일로부터 1년이 지나지 않은 대출을 연체해 발생한 미상각채권에 대해선 원금 감면 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 또 채무자의 가용소득이 상환액을 웃도는 신청자는 고의적 연체로 보고 지원하지 않는다.전문가들은 기초수급자 등 사실상 상환이 불가능한 취약계층과 소액연체자에 대한 채무 지원은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고, 신용도 양호한 은행권 일반 채무자에 대해서도 채무 탕감폭을 늘리는 건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회수가 도저히 불가능한 취약계층 등에 서민금융대책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정부가 채무를 없애준다는 잘못된 신호를 던져줄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위는 2017년 말 장기소액연체자를 대상으로 채무탕감 정책을 내놓으면서 ‘일회성 대책’이라고 강조했지만 불과 1년여 만에 사실상 제도화하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빚을 성실하게 갚고 있는 대다수 채무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이를 위한 서민금융대책과 함께 금융사의 수익성 제고방안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