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노동이사 졸속 추천한 국민銀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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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금융부 기자 soonsin2@hankyung.com금융계 노동이사제 논의의 중심에 있던 국민은행 노조가 사외이사 후보 추천을 중도 포기했다. 노조가 애초 결격 사유가 있는 후보를 ‘졸속 추천’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노조는 21일 백승헌 변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는 주주제안을 철회하겠다고 했다. 백 후보가 소속된 법무법인 지향이 KB금융 계열사인 KB손해보험에 지속적으로 법률자문, 소송 대행을 해왔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주된 법률자문 계약을 맺고 있는 법인의 상근 임직원은 해당 금융회사의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 사외이사의 역할과 개인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주주총회를 불과 한 달 앞두고 백 변호사의 후보 추천안이 철회되면서 노조는 새로운 사외이사 후보 추천의 길도 막혔다. 다음달 27일로 예정된 주총 일정에 맞춰 새로운 후보를 내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위임장을 써줬던 우리사주 조합원들의 노력도 노조의 허술한 일처리 탓에 수포로 돌아갔다.
노동이사제가 불발되자 국민은행 내부에선 노조 집행부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집행부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을 지낸 백 변호사의 경력에 집중한 나머지 졸속으로 후보를 검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국민은행 대리는 “집행부가 사전에 후보자의 결격 사유를 알았다면 조합원을 기만한 것이고 몰랐다면 무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노조가 추천한 후보가 안건으로 올라갔던 2017년과 2018년에는 주주총회라는 경기장에는 들어갔는데 올해는 대회도 못 치르고 기권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박홍배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후보 추천 전에 재직 법인의 거래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점은 변명할 수 없는 노조의 불찰”이라면서도 “경영진의 독단 경영을 견제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참여를 위한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고 말했다.
회사 사정을 잘 아는 노동자가 이사회에 참여해 경영진의 독단을 견제하는 것이 노동이사제 취지다. 하지만 독단 경영의 폐해는 사측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노조 집행부를 견제할 수 있는 또 다른 노동이사제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은행 직원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무겁게 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