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강북엔 경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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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1등 증권회사 사장이 어떻게 도봉구에 사십니까?”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사장이 현역시절 자주 듣던 말이다. 그 자신도 “주요 상장사 CEO 중에 도봉구에 사는 건 내가 유일하다”고 말하곤 했다. 등산 마니아인 그는 지금도 ‘등산 8학군’인 북한산 자락(방학동)에 산다.
강북 사람들에게 가장 불편한 것 중 하나가 교통체증이다. 홍 전 사장은 방학동에서 여의도까지 기나긴 출근시간을 독서에 활용했다지만, 보통 직장인들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은 ‘지옥철’이고, 버스는 더 막히고, 혼잡한 도로가 자가용 출퇴근을 어렵게 한다.서울 강남북 인구가 비슷한데도 이렇게 차이가 크다. 교육, 문화시설, 편의시설 등도 그렇지만 교통 인프라는 천양지차다. 1969년 제3한강교(한남대교) 개통 전에는 없던 강남이 지금은 바둑판처럼 지하철이 뚫려 역세권이 따로 없다. 50년간 투자재원이 강남에 집중된 결과다.
반면 강북은 도심을 빼면 대개 한참 걷거나 마을버스를 타야 역에 닿는다. 수유리에서 구파발로 가려면 4호선을 타고 9개 역을 지나 충무로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한 뒤 11개 역을 더 가야 한다. 3·4호선은 개통된 지 34년이나 됐다.
공공도서관, 공원·녹지 등의 차이도 크다. 도서관 1곳당 인구수는 강남3구가 2만350명인데, 나머지 22개 구는 두 배인 3만9837명에 이른다. 공공자전거 이용건수도 강북이 64%지만 전용도로는 강북(11㎞)보다 강남(72.7㎞)이 월등히 길다.이런 격차를 의식해 서울시장 선거 때마다 ‘강남북 격차 해소’가 단골 공약이지만 제대로 지켜진 게 별로 없다. 그제 박원순 시장이 청량리와 목동을 잇는 강북횡단선(25.72㎞)을 비롯한 2차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을 또 내놨다. 강남북 균형발전과 교통 소외지역 해소가 명분이다.
그런데 노선들마다 죄다 4량 이하짜리 경(輕)전철이다. 강북 주민들 사이에선 당장 “강남에는 지하철을 사통팔달 연결하면서 왜 강북은 맨날 경전철이냐”는 불만이 나온다. 서울시는 “중(重)전철은 예상이용객이 ㎞당 1만 명 이상 돼야 하는데 강북횡단선은 약 8000명이고, 공사비도 경전철이 40% 적게 든다”고 설명한다. 경제성이 낮아 예비타당성 심사 통과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우이신설선이 10년 넘게 걸렸듯이, 최종 개통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강북은 구시가와 고개·비탈길이 많아 인프라 확충이 쉽지 않다. 유동인구를 불러모을 업무·상업시설도 적다. 하지만 대도시 교통망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때도 많다. 강남도 그렇게 발전한 측면이 있다. 강북은 교통이 나빠 발전을 못 한 건가, 발전을 못 해 교통이 나쁜 건가. 닭과 달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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