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평등부터 앞세우는 사회는 자유마저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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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S13
밀턴 프리드먼《선택할 자유 (Free to Choose)》“자유(freedom)보다 평등(equality)을 앞세우는 사회는 평등과 자유, 어느 쪽도 얻지 못한다.”“다양성과 역동성을 의미하는 자유는 오늘의 약자층이 내일의 특권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정부 개입주의는 잘못된 환상"…개입 최소화해야
정부 역할 강조한 케인스에 맞서
시장경제·민주주의 복원 주창한
시카고학파의 선구적 경제학자
“자유(freedom)보다 평등(equality)을 앞세우는 사회는 평등과 자유, 어느 쪽도 얻지 못한다. 평등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힘이 자유를 파괴할 것이며, 당초의 목적과 상관없이 그 힘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 (중략) 자유는 다양성과 역동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오늘의 약자층이 내일의 특권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위에서 아래까지 모든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1980년 펴낸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에서 자유보다 평등을 우선시하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고, 정부 주도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정부개입주의는 잘못된 환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제약 없는 경제 활동 등을 포함하는 개인의 자유,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을 의미한다. 프리드먼의 자유주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자유보다 평등을 앞세우면 평등과 자유, 어느 쪽도 얻지 못한다’는 문구는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가 프리드먼 사후(死後)에 발간한 《자유에 관한 밀턴 프리드먼 선집(Milton Friedman on Freedom)》에도 실려 있다.
‘정부 만능 시대’에 자유의 가치 강조프리드먼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1970년대까지 정부 역할을 강조하며 승승장구하던 케인스경제학에 맞서 줄기차게 시장경제와 자유주의 복원을 주창한 시카고학파의 대부다. 통화이론과 소비함수이론으로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지만, 자유주의 경제학으로 세계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프리드먼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 카를 포퍼 등과 함께 1947년 스위스에서 자유주의 학자들의 모임인 몽펠르랭소사이어티(MPS)를 결성해 자유주의 가치를 지키고 확산하는 데 힘을 쏟았다. 2017년 창립 70주년을 맞은 MPS는 그해 5월 200여 명의 세계 석학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경제신문사 주관으로 열린 서울총회에서 자유와 번영의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선택할 자유》와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는 프리드먼의 대표 저작이다. 그중 《선택할 자유》는 프리드먼이 시카고대에서 은퇴한 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장점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제작한 TV 프로그램을 기초로 쓰여져 사례가 더 구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통제하고 간섭하는 정부가 어떻게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는지,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보여준다.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샤워실의 바보(Fool in Shower)’는 프리드먼이 정부의 무능과 어설픈 경제정책을 꼬집기 위해 내놓은 비유다. 바보가 샤워를 하면서 냉수와 온수 수도꼭지를 제대로 조작하지 못해 낭패를 본다는 것으로, 정부가 엉터리 경기 진단을 토대로 잘못된 경기 대책을 집행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줄곧 “정부의 역할은 개인의 생명과 재산, 자유를 지키는 일로 최소화해야 하며 정부의 힘은 최대한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진정한 자유인이라면 나라가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않아야 하며 스스로가 개개인의 책무를 어떻게 감당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각자의 삶을 정부 간섭 없이 자유롭게 계획하고 꾸려가는, 자기책임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개인의 삶은 스스로 책임지는 것”최근 들어 많은 국가에서 정부 역할이 계속 커지고 있다. 세대 간, 계층 간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는 이유로 소득 분배는 물론 고용시장, 상품가격 등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정부개입주의가 강화되는 추세다. 프리드먼이 우려한 자유보다 평등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개인의 자유와 책임보다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정부 주도의 복지 정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직·간접적인 노동시장 개입도 늘고 있다.
앞서 MPS 서울총회에 참석한 야론 브룩 미국 에인랜드연구소장은 “정부가 규제와 보조금 등으로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고 있는데, 그게 정치적 불평등이자 경제적 평등을 훼손해가는 과정”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 개별적 자유를 지켜주지 않는 정부가 큰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요즘 학계에서도 외부 눈치를 보느라 경제적 자유를 말하는 이가 많지 않다. 프리드먼이 얘기한 자유주의 가치를 다시 새겼으면 한다.
김수언 논설위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