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대고 30초면 부정맥 진단…'손목 위 병원' 시대 성큼

과학 이야기

쑥쑥 크는 디지털헬스 기술
애플워치4, 불규칙한 심박수 인지…PDF 파일 변환해 병원에 전송
지난해 12월 미국 소셜미디어 레딧에 올라온 ‘애플워치’와 관련한 경험담이 화제가 됐다. 이덴텔(edentel)이란 아이디를 쓰는 한 회원은 “애플워치4에 들어간 ECG(심전도) 측정 기능으로 전혀 몰랐던 심방세동 징후를 알게 됐다”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니 정말 심방세동이어서 나도 의사도 놀랐다”고 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애플이 ECG 측정 기능을 선보인 뒤 이 회원과 같은 이유로 병원을 찾은 이들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서도 곧 이런 사례들을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14일 애플워치와 같은 손목시계형 심전도 측정기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규제 샌드박스 1호로 선정하면서 ‘손목 위의 병원’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30초간 손가락만 대면 ‘부정맥 판정’

세계 최초로 민간에 쓰인 웨어러블 심전도 측정기는 지난해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받은 애플워치4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전용 앱(응용프로그램)을 실행한 뒤 디지털크라운(액정 옆에 붙어있는 소형 부품)에 손가락을 갖다 대는 게 끝이다.

30초가 지나면 화면에 심박수와 관련한 차트가 뜨는데 부정맥이 의심되면 경고 메시지가 함께 나온다. 사용자는 검사 결과를 PDF 파일로 변환해 병원에 보낼 수 있다. 불규칙한 심박수를 자동으로 인지한 뒤 경고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애플을 필두로 세계의 다양한 기업들이 웨어러블 심전도 측정기를 개발하고 있다. 심전도 측정 웨어러블 기기의 출시를 준비 중인 구글의 관계사 ‘베릴리(verily)’는 지난달 FDA로부터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승인을 얻었다. 베릴리는 일부 부정맥 진단에 특화된 감지 기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웨어러블 심전도 측정기 개발에서 가장 큰 장벽은 규제였다. 손목시계로 감지한 신체 변화를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이를 엄격히 금지했다. 그러나 2017년을 기점으로 웨어러블 심전도 측정기에 대한 제한적인 허가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고려대병원과 휴이노가 함께 만든 손목시계형 심전도 측정기가 제도권에서 인정하는 첫 웨어러블 의료기기가 될 전망이다. 의사가 이 기기를 활용해 환자의 상태를 원격 모니터링하고, 이상이 발생할 시 내원을 안내하는 형식으로 활용할 예정이다.전문가들은 웨어러블 의료기기들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현재는 단순히 부정맥 징후 등을 파악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인공지능(AI)을 접목하고 데이터가 축적되면 보다 정밀한 진단이 가능해질 것이란 설명이다. 의료 비용을 낮추는 데도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이용자에게 위험성이 높은 질병을 안내하는 방법으로 발병률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

수초 만에 진단 완료…‘AI 의사’ 시대 온다

병원에서 활용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은 웨어러블 기기를 크게 앞선다. 유명세로 따지면 미국 IBM이 개발한 프로그램인 ‘왓슨 포 온콜로지’가 첫손에 꼽힌다. 이 프로그램은 암과 관련된 종합 데이터베이스다. 의학 학술지 300개, 의학서 200개 등 1500만 쪽 분량의 의료 정보를 토대로 가장 성공률이 높은 치료법을 제안한다.왓슨 포 온콜로지가 ‘의료 컨설턴트’라면 미국 아이디엑스가 지난해 선보인 아이디엑스디알은 ‘진짜 의사’다. AI 프로그램이지만 사람 의사처럼 의학적 소견을 내놓을 수 있다. FDA가 의사의 결과 해석을 요하지 않는 ‘자율적 AI’를 허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자의 망막 이미지를 입력하면 아이디엑스디알이 기존 환자의 자료와 자동으로 비교해 당뇨 망막병증 여부를 진단한다. 검사 결과에 소요되는 시간은 1분 이내다.

베릴리의 심혈관 질환 검사 프로그램도 미국 의학계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높은 정확성 덕이다. 환자의 눈을 스캔해 안구 뒤편의 사진을 얻은 뒤 AI의 머신러닝 알고리즘으로 심혈관 질환 가능성을 자동으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이 분석을 통해 환자가 얼마나 높은 심혈관 질환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병원 운영의 효율화를 돕는 기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병원 예약, 진료비 납부, 의약품 구매 등의 절차가 모바일 앱 터치 한 번으로 가능해졌다. 선두주자는 중국이다. 모바일 의료 플랫폼 ‘핑안 굿닥터’를 중심으로 모바일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업계에선 올해 중국의 모바일 의료시장 규모가 409억위안(약 6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