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ㅣ '사바하' 박정민 "멋있는 역할요? 언젠간 할 날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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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바하' 나한 역할 배우 박정민

'사바하'는 영화 '검은 사제들'로 구마의식을 한국적으로 풀어내며 550만 관객을 동원했던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다. 신흥 종교 집단을 쫓던 박목사(이정재 분) 앞에 나한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사건이 전행되는 스릴러다. 박정민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중저음의 목소리, 그와는 상반된 노란색으로 탈색한 머리로 극을 종횡무진하며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영화가 공개된 후 "역시 박정민"이라는 호평이 이어졌지만, 정작 본인은 쑥쓰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인터뷰에 응했다. "이전까진 언론 시사회에선 '내가 잘했나, 못했나'에 집중하느라 제 연기 보기에 바빴어요. 그런데 '사바하'는 온전히 이야기에 몰입했어요. 이런 건 처음인 거 같아요. 제가 아니라 이야기 자체를 응원하면서 봤어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영화인 거 같습니다."

"'변산' 촬영을 마치고 곧바로 '사바하'에 들어갔어요. 그땐 살짝 곱슬머리라 머리를 자르고 싶어서 '스포츠 머리로 가면 안될까요?' 여쭤봤는데, 자르지 말고 염색을 하고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노란 머리엔 두가지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진화된 위장술이에요. 잡범에 가까운 모습을 한 이 아이가 설마 살인을 하고 돌아다니겠냐, 이렇게 보여주는 거죠. 또 하나는 박목사와 대비에요. 둘이 같은 팀처럼 보이면 안되잖아요. 색을 다르게 써서 이미지를 잡았죠."장재현 감독의 전작 '검은 사제들'에서는 강동원이 사제복 신드롬을 일으켰고, '사바하'에서 이정재는 명품으로 멋을 내고, 외제차를 운전하며 스타일리시한 목사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나한은 항상 항공 점퍼에 작업복 차림이었다. 박정민에게 "더 멋을 내고 싶진 않았냐"고 물었다.
"의상은, 전 주는 데로 입어요. 멋있는 역할, 로맨틱 코미디 이런 건 제안을 받아본 적도 없어요. 그런 역할은 잘 안 맞고, 안 죽는데, 저는 일단 시작할 때부터 몇 대 맞고 가는거 같아요. 이젠 이게 팔자인가 싶고요.(웃음) 제가 그런 대사, 행동들을 연기할 때 오글거리지 않고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언젠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극중 나한은 박목사가 쫓는 신흥종교 단체 사슴동산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사슴동산은 불교에서 파생됐다. 석가모니를 믿게 되면서 착하게 살기로 마음 먹은 악신 사천왕을 신으로 모신다. 불교와 기독교가 각자의 길을 가며 신의 존재라는 철학적인 화두를 던지는 '사바하'다. 하지만 정작 박정민은 종교가 없다. 자칫 어렵거나 낯설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박정민은 "그 낯선 느낌이 좋았다"고 말했다.
"교회는 군대 있을 때 열심히 다녀봤지만 종교는 없어요. 불교도 절에 가서 염주 사서 차고, 절하는 정도만 할 줄 알 지 다른 건 몰라요. 그러다보니 영화에서 보여지는 불교적인 세계관이 정말 낯설고 새롭더라고요. 이건 일반적으로 살인자가 누군가를 쫓아 죽이고, 그 사람을 잡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다른 세계관이 구축돼 있죠. 그래서 더 끌렸어요."'사바하'에서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소재로 동물들도 여럿 등장한다. 박정민이 촬영장에서 우스갯 소리로 "'신비한 동물 사전'이랑 맞붙으면 안된다"고 말하자, 장재현 감독이 "동물은 우리가 더 많이 나와"라고 받아친 일화도 있었다. 사슴, 코끼리, 뱀 등의 동물은 CG로 구현해 냈다. 그 외에 개, 새 등이 직접 등장했던 장면은 "정말 소중하게 그들의 컨디션을 챙겨가면서 촬영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정작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은 CG없이 촬영됐다. 나한이 악몽에 시달리며 귀신을 보는 장면 역시 직접 검은 분장을 한 아이들을 와이어에 메달고 찍었다.
"얼굴은 하얗게 하고, 피를 묻히는 분장을 하는 거에요. 촬영을 하면서도 좀 무서웠어요. 집에가서 '아, 씨' 하는 이런 느낌이랄까요.(웃음) 그런데 애들은 좋아하더라고요. '한 번만 더하자' 이러면 까르르 웃으면서 '네'하고요. 나중에 와이어줄만 CG로 지웠어요. 영화로 봐도 무섭더라고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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