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렬 전 연구원 "'살 날 많은 독재자' 김정은, 결국 비핵화로 갈 것"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인터뷰
"무엇이든 그 자체로 빅딜"
미·북, 서로가 진정 뭘 원하는지 꿰뚫어… 한국엔 ‘중견국 외교’로 도약할 기회
김정은 서울 답방은 미·북이어 북·중 회담 이후에 성사…3말4초는 어려워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조치를 내놓고, 미국이 그에 따른 상응조치를 제시한다면 그 자체가 ‘빅딜’입니다.”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차 미·북 정상회담 전망에 대해 “국내에서 지나치게 빅딜과 스몰 딜이란 이분법적 접근을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 전 연구원은 이번 회담을 “백척간두 위에서 첫 걸음을 떼는 것”으로 비유했다. 그만큼 양쪽 모두 상당한 정치적 부담감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비핵화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양측이 하노이에서 치열하게 실무협상 중입니다. 접점을 찾았을까요.

“일단 상호 희망사항을 그 어느 때보다 구체적으로 털어놨을 겁니다. 이번 회담에선 북한과 미국 모두 ‘손에 잡히는 조치’를 서로 받아내서 국제 사회에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엄청나니까요.”회담 의제가 12개가 된다고 미국이 먼저 얘기했습니다.

“북한에선 영변 핵시설 폐기와 더불어 핵사찰을 받겠다는 포괄적 약속은 할 것 같습니다. 북한도 영변 핵폐기 정도로는 미국을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본 후에 대북제재 완화를 중심으로 상응조치를 내놓겠죠.”

결과를 어떻게 예측하십니까.“양측은 서로가 원하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어요.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냈다는 국제사회의 인정을, 북한은 미국의 제재 완화를 통한 경제적 숨통 틔우기를 각각 원합니다.”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로 나아가리라 보십니까.

“북한은 1950년대부터 비대칭 전력으로서 핵을 이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3대째 세습이고 게다가 나이도 30대로 젊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독재자죠. 과연 핵을 끌어안은 채 각종 제재에 시달리며 굶주리는 걸 택할까요?”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시는군요.

“돈과 식량이 없으면 독재도 통하지 않습니다. 김정은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비핵화 프로세스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파격적인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미국도 다급합니다. 미국과 북한이 두 번이나 정상회담을 하리라고 2017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죠. 북한 비핵화는 미국으로서도 세계 핵확산을 막음과 동시에 자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북한으로선 트럼프 대통령이 기회인가요.

“서로의 이익이 맞물린다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과거 잣대로 국제 정세를 파악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기존 전망의 틀 자체가 깨졌으니까요.”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경찰’이라는 미국의 이미지를 깨려고 합니다.

미국인들도 자국 우선주의를 원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도 우리 이익이 어긋나면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파격을 보여준 것도 이같은 시류에 기인합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국제정세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한반도가 세계 외교 지형을 크게 뒤흔드는 중심지가 된 점을 우선 꼽고 싶습니다. 그동안 국제 사회에선 강대국들의 합의에 따라 약소국들의 운명이 결정됐지만, 이젠 강대국과 약소국의 구도 자체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단 걸 이번 정상회담이 증명했거든요.”

동북아 정세에는 어떤 변화가 예상됩니까.

“과거의 정형화되지 않은 방식으로 이익을 얻어내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입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게 일본입니다. 미국을 등에 업고 동북아 정세에 영향력을 과시해 왔는데 점점 어려워지고 있거든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선 아주 초조할 겁니다.”

한국이 이번 회담을 통해 얻는 이익은 무엇일까요.

“중견국으로서의 외교를 펼칠 기회를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 규모는 중진국이었지만 분단으로 인해 사실상 약소국 외교에 머물렀습니다. 이젠 판세를 객관적으로 읽으면서 능동적인 외교를 펼쳐야 합니다.”

한·미 동맹 약화를 우려하는 시각은 여전합니다.

“아닙니다. 한·미 관계는 미·북 회담을 통해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우리 정부가 미국과 긴밀히 공조하지 않았다면 두 차례의 미·북 회담이 성사되긴 어려웠다고 봅니다.”

김정은의 서울 답방은 언제쯤 성사될까요.“이번 회담이 끝나면 김정은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날 겁니다.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을 전후해 시 주석이 평양을 방문할 것이란 관측이 많아요. 북·중 정상회담이 끝나야 서울 답방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정은으로선 우리 정부로부터 경제협력이란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 뒤 서울에 오는 게 이득일 테니까요.”

글=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