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에 '카나브 PM' 변신한 김승호 "올해 처방액 1000억 이끌겠다"

명함 돌리며 보령제약 신약 홍보

국산 新藥 첫 처방액 1천억 도전
내달 2일 카나브 8주년 행사
“안녕하세요. 보령제약 ‘카나브’ 프로덕트 매니저(PM)입니다.”

지난달 제약업계 관계자들이 모인 신년회 자리. 최연장자 어르신이 일일이 명함을 돌리며 인사하자 웃음이 터졌다. 이 노신사는 “카나브에 대해 궁금한 점은 제게 문의해달라”며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명함에는 ‘세계적인 대표 고혈압 신약 카나브 PM 김승호’라고 적혀있었다.카나브 홍보대사 자처한 김승호 회장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87·사진)이 PM으로 변신했다. 제약사의 꽃이 영업이라면, PM은 꽃이 필 수 있도록 영양분을 공급하는 뿌리에 비유할 수 있다. 제품 개발·기획 단계에서 시장조사는 물론 출시 이후에는 마케팅, 홍보, 영업 등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까지 책임지기 때문이다. PM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시장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김 회장이 직책 강등을 자처하면서 카나브 구원투수로 나선 이유다.

김 회장은 올 1월 카나브 총괄 PM(Executive PM)으로 임명됐다. 명함도 새로 팠다. ‘얼굴이 명함’이었던 김 회장이 만나는 사람마다 새 명함을 주며 카나브를 알리니 웬만한 영업사원들보다 홍보 효과가 뛰어나다는 게 보령제약 관계자의 말이다.
해외에서는 주력 제품의 PM을 최고경영자(CEO)가 맡기도 하지만 국내 제약사 중에선 김 회장이 처음이다. 국내 제약사 PM의 평균 나이는 40대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대부분 전문경영인 체제인 것을 고려하면 국내외를 통틀어 최고령 PM인 셈이다. 김 회장이 직접 PM으로 나선 것은 올해 카나브패밀리(카나브, 듀카브, 투베로)의 연간 처방액 1000억원 돌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카나브패밀리는 지난해 월처방액 60억원을 넘어섰고 연간 668억원의 처방 실적을 기록했다. 김 회장은 “국산 신약 중 최초로 연처방액 1000억원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며 “올해는 목표 달성에 성공해 국산 신약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고 말했다.

지구 12바퀴 돌며 해외 개척
김 회장은 올해 카나브패밀리의 해외 진출을 위해 윗선에서 고공 지원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김 회장은 2010년 9월 카나브가 허가를 받은 이후 전 세계 각국으로 50만㎞를 비행했다. 지구 12바퀴를 돌고도 남는 거리다. 브라질, 멕시코, 중동, 러시아 등 카나브 수출 계약이 있는 곳이면 24시간 비행도 마다하지 않고 날아갔다. 김 회장의 열정 덕분에 회사 분위기도 바뀌었다. 이한웅 카나브 마케팅팀장은 “회장님이 PM으로 온 뒤로 직원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지고 시야가 넓어졌다”며 “결단력이 있고 추진력이 강해 의사결정 속도도 빨라졌다”고 말했다. 다음달 2일 카나브 발매 8주년 행사도 김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준비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김 회장은 오는 4월 준공하는 예산 신공장을 통해 카나브 생산 규모를 세 배 이상 확대하고 글로벌 신약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김 회장은 “2023년 특허 만료 이후를 대비해 염 변경 약물을 개발하고 적응증을 추가해 차별화할 계획”이라며 “현재 4개인 복합제에 더해 3종을 추가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제약이 나와도 카나브패밀리의 처방 데이터가 쌓여있어 오리지널 약물로서 경쟁 우위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김 회장의 목표는 카나브패밀리를 연매출 3000억원 규모의 블록버스터로 키우는 것이다. 그는 “해외 시장은 3년이 지나야 자리를 잡고 본궤도에 오르기 때문에 지금이 제일 힘든 시기”라며 “9개사가 경쟁하는 1조5000억원 규모의 시장에서 5년 내 시장점유율 30% 달성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