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한컴그룹 회장 "컴맹이면 어때…리더는 큰 그림을 잘 그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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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탐구2010년 김상철 한글과컴퓨터그룹 회장이 한컴의 아홉 번째 주인이 됐을 때 한컴의 부활을 전망한 사람은 드물었다. “인수합병(M&A) 전문가니 곧 회사를 되팔 것이다” “정보기술(IT)업계 출신이 아닌데 경영할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김 회장은 자신의 주특기인 M&A로 정면돌파했다. 인수 후 9년이 지나 한컴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사업 등을 아우르는 종합 IT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엔 역대 처음으로 연매출 2000억원 고지에 올랐다.
한컴 인수 9년 만에 종합 IT社로 키운 M&A 승부사
한글과컴퓨터의 부활 이끌다
그는 스스로를 ‘컴맹’이라고 했다. 아직도 스마트폰 사용을 어려워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일 법하지만 숨기지 않았다. 기업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그런 사소한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는 얘기다.경기 성남시 분당 한컴타워에서 만난 김 회장은 “IT업계 출신만 IT기업을 이끌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오히려 고정관념”이라고 말했다.
영업맨 출신 ‘M&A 전문가’
김 회장은 ‘영업맨’ 출신이다. 1978년 금호전기에 입사한 뒤 19년간 영업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1997년 회사가 어려워지자 계량기사업부문을 인수해 금호미터텍을 설립했다. 기업 운영은 녹록지 않았다. 금호미터텍은 출범 직후 외환위기 여파로 존폐의 벼랑 끝에 섰다.김 회장은 미개척지인 동유럽으로 눈을 돌렸다. 전력 인프라 설치가 한창이던 유럽의 라트비아로 날아갔다. 현지 관련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지만 기적처럼 계약을 따내면서 회사가 되살아났다. 그는 “수백 명의 식구(직원)를 길거리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큰 힘이 됐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M&A를 거쳐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M&A에 눈을 떴다. 2004년과 2005년 LCD(액정표시장치) 장비업체 두레테크, 사이버보안업체 소프트포럼(현 한컴시큐어)을 연이어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영업이익률이 높은 업계 ‘알짜 기업’을 찾아내 인수한 뒤 매각하는 전략으로 수백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당시 축적한 자금은 2010년 한컴을 M&A하는 데 탄탄한 기반이 됐다.
한컴 인수는 김 회장에게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M&A로 이익을 챙기기보다 사업을 키워보자고 결심했다. 그는 당시 한컴과 모 제약회사를 두고 인수 대상을 고민하고 있었다. 사업 안정성만 따진다면 제약회사를 인수하는 편이 타당했으나 김 회장은 미래 사업성을 택했다. 소프트포럼 사옥도 매각해 인수 자금을 확보했다.김 회장은 “한컴의 기술 저력과 브랜드 인지도를 잘 활용하면 세계 시장에서 통할 IT기업으로 육성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컴 인수 후 더 과감한 행보를 이어갔다. 2014년 한컴MDS(옛 MDS테크놀로지)를 인수했다. IT업계에서는 의외라는 평가가 나왔다. 산업용 소프트웨어업체인 한컴MDS와 한컴엔 시너지를 낼 공통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부에서도 걱정이 적지 않았지만 김 회장은 밀어붙였다. 판단은 적중했다. 한컴MDS는 성장세를 타며 한컴의 IoT, 로봇 등 신사업을 책임지는 핵심 계열사로 자리잡았다. 산청, 한컴지엠디 등 굵직한 6개 기업도 잇달아 M&A해 한컴 계열사로 편입했다. 한컴그룹은 연매출 5500억원이 넘는 종합 IT 기업집단이 됐다.직원 모두가 소통하는 게 원칙
공격적인 M&A 활동과 달리 김 회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부드러운 불도저’로 통한다. 직원들과 세심하게 소통하면서도 특유의 불도저 스타일이 배어 있어 붙은 별명이다. 그의 집무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여러 임원을 거치지 말고 직접 보고하라고 주문할 때도 있다.
김 회장은 평소 60~70명가량이 참석하는 대규모 회의를 주재한다. 계열사 대표부터 일선 개발자까지 참석해 회장과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나눈다. 개발자들이 직접 회장에게 보고하고 의견을 전달해달라는 취지다. 최대 150명까지 회의에 참석한 적도 있다. 회의가 늘어지기 쉬워 보이나 각자 맡은 부분만 빠르게 발표해 대부분 2시간 안에 끝난다.
한컴 관계자는 “회의 중간에 나가도 될 정도로 분위기가 자유롭다”며 “의견을 공유할 기회여서 참여율도 높다”고 했다.
김 회장의 인재 등용 방식도 비슷하다. 한컴그룹은 1년에 4~5명의 ‘특급 승진’ 대상자를 정한다. 그를 비롯해 30여 명의 계열사 임원이 한데 모여 회의와 투표로 대상자를 결정한다. 몇 명이 아니라 다수가 동의하는 인재를 뽑자는 생각에서다.
한컴에는 직원의 학력이나 출신 기업을 절대 먼저 묻지 않는다는 독특한 기업문화도 있다. 대외적으로 임원의 이력을 밝힐 때도 학력을 기재하지 않는다. 학력, 출신 등으로 인해 사내 소통에 벽이 생기면 안 된다는 게 김 회장의 지론이다. 한 한컴 직원은 “근무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최근에야 김 회장에게 출신 대학을 밝혔다”고 했다.
국민 SW 넘어 글로벌 시장 공략
김 회장은 작년 미국 러시아 중국 독일 등 10여 개국을 돌며 사업을 함께할 협력사를 구했다. 국내 비중이 90% 넘는 한컴의 매출 구조를 대대적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세계 시장에서 한컴의 기술력이 뒤지지 않는다는 그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한컴은 지난해 6월부터 클라우드업계 세계 1위인 아마존웹서비스(AWS)에 한컴오피스의 문서편집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올 6월부터는 서비스 국가와 기능을 늘린다.
AWS와 손잡는 과정에서도 김 회장의 결단력이 빛을 발했다. 3년 전부터 AWS와 제휴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무진을 미국 시애틀 AWS 본사로 10여 차례 파견했다. 지난해 1월 클라우드 서비스용 워드프로세서 개발 계약을 맺자마자 5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서비스를 출시했다. AI 분야에서는 중국 기업인 센스타임, 아이플라이텍 등 유명 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김 회장의 목표는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인 클라우드, AI 분야 등에서 한컴의 미래 먹거리를 계속 발굴해내는 것이다.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 M&A를 고려하고 있다.
■김상철 회장 프로필△1953년 출생
△1978년 금호전기 입사
△1981년 단국대 행정학과 졸업
△1997년 금호미터텍 대표
△2005년 소프트포럼 대표
△2011~2013년, 2015년 12월~ 한글과컴퓨터 대표
△2015~2016년 국제로타리 3640지구 총재
△2015~2019년 2월 정동극장 이사장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