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EU] 마크롱 교육개혁에 반발...佛 교사들 "모든 학생에게 최고점 주겠다"

개혁은 언제 어디서나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엔 교사들의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공공기관 비대화, 과도한 복지 정책으로 국가 전반에 비효율이 만연하자 이런 ‘프랑스병’을 고치겠다고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해온 그입니다. 마크롱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 국영철도(SNCF) 개편, 공무원 감원, 법인세율 인하, 실업수당 개편 등 경제 분야에 이어 교육개혁도 추진하고 있습니다.프랑스 정부가 지금보다 대학 입학을 까다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대입 제도를 개편하자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까지 시위에 나섰습니다. 파리와 서부 프랑스 지역에선 고등학교 교사들이 새 대입 제도가 ‘교육 평등’을 해친다며 모든 학생들에게 학생부(내신) 최고점을 주는 방식으로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크롱 정부의 교육 개혁 내용이 어떻길래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먼저 프랑스의 대학 입시 제도를 간단히 보겠습니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바칼로레아라는 시험을 치릅니다. 한국의 수학능력시험 같은 것이죠.바칼로레아는 19세기 나폴레옹 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시험입니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바칼로레아 합격선만 넘으면 그랑제콜(소수정예 고등교육기관)을 제외하고 원하는 대학과 전공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대학 서열도 없습니다. 평균 학비도 연 650유로(약 86만원) 수준으로 낮은 편이죠.

예전에는 바칼로레아 합격률이 10%에도 못 미칠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바칼로레아를 통과한 사람은 대학교 학사 학위를 딴 수준으로 인정할 정도였죠. 그러나 68혁명을 거치면서 ‘엘리트 교육 타파’ 분위기가 형성됐고 시험 난이도가 점점 낮아지게 됐습니다. 2010년대 들어선 합격률이 75~80%에 달하면서 오히려 시험이 너무 쉽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죠.
이렇다보니 해마다 바칼로레아 합격자가 늘었습니다. 진학 희망자가 정원을 크게 웃도는 대학이 속출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됐습니다. 원래 프랑스 대학은 바칼로레아 합격자에겐 따로 선발시험 없이 원하는 입학을 허용했지만 인원이 넘치다 보니 더이상 그럴 수가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2009년부터는 진학 희망 대학과 학부에 사전 등록을 하고 만약 정원을 초과하면 무작위로 추첨해 대학을 배정하도록 했습니다. 무작위 추첨으로 학생을 뽑는다는 게 좀 이상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는데요. 프랑스 교육의 핵심 가치는 평등입니다. 68혁명 때 학생들이 투쟁을 통해 평등 교육을 쟁취했다는 역사적 배경이 있어서 학생이 대학보다 ‘갑’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학생 선발권을 갖는 게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마크롱 대통령이 이런 대학 입학 절대평가제와 무작위 추첨제도에 칼을 들이댄 것입니다. 마크롱 정부의 대입 개편으로 이제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바칼로레아 시험을 치르기 전 지망 대학을 미리 정하고, 대학은 학생들의 성적과 다양한 활동 기록 등 학생부를 열람해 조건부로 입학과 불합격을 정합니다. 학생부를 대학이 열어볼 수 있게 허용하면서 사실상 학생 선발권을 준 것이죠.

이뿐만 아니라 2021년부터는 대학 시험 자체가 대폭 바뀝니다. 고등학교 과정 중 국가시험을 치르고 학생부도 10% 반영하게 됩니다. 마크롱 정부는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의 유급률이 60%나 된다며 대입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바칼로레아 합격률이 80%에 육박할 만큼 너무 쉬운 시험과 무관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바칼로레아와 현행 대학 제도는 프랑스 10대들을 취업시장에서 충분히 대비시키고 있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반면 프랑스 학생들은 새 대입제도로 학생들이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저소득층이 소외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죠.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노란조끼 시위 등에 합세해 거리에서 이 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여기에 이제는 교사들까지 일괄적으로 학생부 만점을 주면서 저항하고 있는 것이죠. 파리 소피제르망 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프랑스 인터라디오에 “학교장과 교육기관들이 학생들의 등급 체계에만 의존하고 있다”며 “항의 시위를 통해 이 같은 행정 시스템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