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내몰린 소상공인들…70% "1년새 매출 급감, 한 명 고용도 힘들다"

중기부, 소상공인 실태조사

"장사 외 다른 선택지 없었다"
29%는 月매출 200만원도 안돼…83% "정부 지원 정책 모른다"
서울 중구의 한 상가에서 3년째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53). 이달 꼬박 장사해 손에 남은 현금은 200만원이었다. 김씨는 경비를 아끼기 위해 직원도 두지 않고 있다. 아내와 둘이 하루 열 시간 넘게 일해 번 돈이다. 월매출은 600만원쯤 됐지만 식재료 비용과 월세 등을 빼고 나니 남은 것은 200만원과 온몸에 밴 기름 냄새뿐이었다.

김씨는 중소기업을 다니다가 10여 년 전 퇴직했다. 처음엔 피자를 팔았다. 장사가 신통치 않아 치킨으로 바꿨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주변에 치킨집이 생겨 매출은 1년 전보다 줄었다.작년 70% 매출, 이익 줄어

중소벤처기업부는 26일 ‘전국 소상공인 실태 시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8월 27일부터 9월 14일까지 전국 9546개 소상공인 사업체에 조사원을 보내 면접 형태로 조사했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점주 김씨의 사례는 이 통계를 반영해 각색한 것이다. ‘한국의 평균적인 소상공인’의 삶이다.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소기업에 다니다가 퇴사, 평균 39.8세에 첫 창업에 나섰다. 종잣돈은 평균 1억1000만원. 생계를 위해 창업에 나섰지만 앞길은 평탄치 않았다.

자영업자의 73.5%는 “폐업 경험이 1회 이상 있다”고 밝혔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장사밖에 없었다는 얘기다.이들이 2017년 손에 쥔 평균 월수입은 269만원이었다. 같은 해 임금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인 287만원보다 적다. “소상공인의 삶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소상공인의 연평균 매출은 2억379만원이었다. 하지만 비중을 보면 연매출 3600만원을 올리지 못하는 소상공인이 28.5%로 가장 많았다. 영업이익은 1년에 1200만~2400만원을 남기는 소상공인(28%)이 가장 많았다. 중간값을 12개월로 나누면 월평균 150만원을 손에 쥔 셈이다. 소상공인 사이에서도 소득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그마저도 매년 줄어들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2016년보다 매출이 줄어든 곳은 70.9%, 영업이익이 감소한 곳은 72.1%였다.

상권 쇠퇴·경쟁업체 출현 등으로 매출 감소형편이 어렵다 보니 고용인원은 평균 1명이 채 안 됐다. 무급으로 일하는 가족근로자를 쓰는 곳이 많았다. 고용현황을 보면 상용근로자 0.5명, 임시·일용직 0.2명, 무급가족종사자 0.2명 등이었다.

일할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57.6%가 직원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유는 적합자 없음(12.3%), 지원자 없음(11.8%), 잦은 퇴사(10.3%) 순이었다.

자영업 형편이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로는 상권 쇠퇴의 영향이 크다는 응답(46.2%)이 많았다. 경쟁 업체 출현(24.3%), 제품 및 업종 사양화(5.7%) 등의 이유도 있었다. 대형마트 프랜차이즈 온라인화 등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인건비 상승(2.1%)과 임차료 상승(0.5%)을 꼽은 소상공인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김형영 중기부 소상공인정책관은 “최저임금이 오르기 전인 2017년에 대해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인건비 상승분에 대한 체감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설명했다.소상공인의 영업비용은 연평균 1억7154만원이었다. 월평균 1429만원에 달했다. 원재료 66%, 인건비 14%, 임차료 5.5%, 세금·공과금 3.3%, 가맹수수료 0.9% 순이었다.

대부분 준비 없이 떠밀리듯 창업

이들이 어려운 데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김씨의 사례에서 보듯 퇴직 후 이렇다 할 생계 수단이 없어 준비도 없이 떠밀리듯 창업에 나서는 사례가 많았다. 창업 평균 나이는 39.8세, 생계형 창업은 66.7%에 달했다. 평균 창업 준비 기간은 10.2개월. 61.9%는 6개월 이하였다. 상대적으로 생존 가능성이 높은 프랜차이즈 비율은 7.7%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창업에 나선 탓에 폐업을 경험한 소상공인이 73.5%에 이르렀다.

소상공인 중 절반 이상은 소상공인 창업 지원이나 정책자금 등 정부 지원책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조사 대상의 83.9%가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사업에 신청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신청하지 않은 이유는 ‘신청 방법 및 정보를 알지 못해서’(64.6%), ‘까다로운 자격 요건’(11.4%) 등이었다. 정책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신청 절차도 소상공인들에겐 어렵다는 얘기다.중기부는 본조사를 거쳐 결과를 기반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정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김 정책관은 “오는 8~9월 통계청과 공동으로 본조사를 추진한 뒤 정책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