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2차 핵담판] '미치광이 전략' 버린 트럼프, 그 틈을 파고 든 김정은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장점은 ‘예측 불가능’이다. 동양 사상의 시선에선 ‘후흑(厚黑)’에 가깝다. 미국 언론들은 이를 ‘미치광이 전략’이라 부른다. 사업가로서 잔뼈가 굵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전매특허를 잘 알고 있으며,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노련한 협상가다.

미국 역사상 전후무후하다고 할 만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꽤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핵담판’이 대표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26일(현지시간)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치광이 전략’으로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했다고 분석했다. 미치광이 전략이란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비이성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전략을 말한다.트럼프는 취임과 함께 전례없는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2017년엔 ‘화염과 분노’, ‘전멸’, ‘내 핵 버튼이 더 크고 강력하다’ 등의 거친 언사를 서슴치 않았다. ‘최대한의 압박(Maximum Pressure)’으로 불리는 미국의 북핵 전략은 김정은이 지난해 2월 평창올림픽에 ‘평화 사절’을 보내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해 6월 김정은과 싱가포르에서 첫 대면을 한 이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의 미치광이 전략을 수정한 듯한 발언을 내놓기 시작했다. 김정은과 연애 편지를 주고받듯이 친서 외교를 펼쳤다. 그 사이 ‘슈퍼 매파’로 불리는 존 볼턴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그 자리를 대신한 인물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다. 작년 11월 임명된 비건 대표는 시그프리트 헤커 박사가 이끄는 ‘스탠퍼드팀’의 조언을 받으며 트럼프 행정부 대북정책의 틀을 바꿨다. ‘전부 아니면 전무’에서 단계적·점진적 접근법으로 수정한 것이다. ‘미치광이’ 트럼프 행정부에 ‘이성의 틈’이 생긴 순간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는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제일주의’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념과 진영 논리를 따르지 않는 독특한 정치인이다.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도 미국의 이익을 기준으로 한 거래의 대상일 뿐이다. 이 같은 트럼프식 신조는 같은 공화당 내에서도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역설적으로 자국 우선주의는 대북 정책에 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미국에 해가 되지만 않는다면, 북핵을 폐기가 아닌 관리 대상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란 판단이다. 다시 말해 동결 혹은 봉인을 통해 장기간 관리하고,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장거리탄도미사일(ICBM)만 당장 없앨 수 있다면 미국에 이익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혹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의 완전한 제거를 원치 않는다고 지적한다. ‘조·미 동맹’이라는 파격적인 정세 변화로 오히려 얻을 게 많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재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틈만 나면 ‘오바마보다 내가 낫다’를 외친다. 핵을 보유하도록 방치한 전임 정부보다는 핵담판에 김정은을 앉힌 자신이 훨씬 낫다는 자화자찬이다. 북한을 중국 견제용으로 활용하려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중국이 북한핵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중국의 고민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 옆에 핵을 보유한 말썽꾼이 있다는 것은 중국 입장에선 주한미군의 존재와 미군 핵항모의 인도·태평양 순항과 등가물이나 다름없다.

이런 변화의 흐름을 감안하면 하노이 2차 ‘핵담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치광이 전략’을 고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싱가포르 때보다 좀 더 노련해진 협상가로 변모한 김정은은 이 점을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이 점을 지적했다. 김정은을 협상가로서 자신감이 넘쳐보이는 젊은 독재자로 묘사하면서 “김정은이 채택한 협상 전략 중 하나는 트럼프 측근들이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한 채 트럼프와 독대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젊은 독재자’와 ‘세기의 협상가’가 벌일 하노이 담판이 어떻게 결론이 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