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와중에…'통상 수장' 교체 왜?
입력
수정
지면A13
통상교섭본부장 유명희…유리천장 깨고 산업부 첫 여성 차관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대외 통상 업무를 총괄하는 통상교섭본부장이 28일 전격 교체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현종 전 본부장(60)의 후임으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52)을 승진 발탁했다. 미·중 무역분쟁이 한창인 데다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자동차 관세 부과 가능성이 대두되는 시점이어서 이번 교체 인사는 이례적이란 평가다.
한·미 FTA 개정 협상 이끌어, 내부선 "부드러운 리더십" 환영
김현종 前 본부장은 청와대行…남북 경제협력 실무 총괄할 듯
김 전 본부장 ‘알고 보니 대북 전문?’미국 변호사로 주유엔대표부 대사 출신인 김 차장은 청와대에서 남북한 경제협력을 집중적으로 챙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북 관계가 진전을 이룰 경우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 과정에서 미국 내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와 관련, “외교·통상 분야에서 쌓아온 현장 경험과 미국 등 주요국의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외교·통일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다만 ‘경협 총괄’을 선임한 당일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돼 빛이 바랬다. 김 차장이 이번 정부와 ‘코드’가 맞을지 의문이란 지적도 있다. 김 차장은 2016년 2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북핵에 대해서는 우리가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며 “어떻게 보면 개성공단을 폐쇄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일각에선 김 차장이 교섭본부장으로 있던 지난 1년 반 동안 고위직이 잇달아 그만두는 등 조직 관리 문제가 노출돼 문책성으로 교체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유 본부장 발탁에 내부선 “환영”
사표까지 제출한 유 실장이 신임 본부장으로 발탁된 것도 의외라는 반응이다. 유 본부장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승진 가능성을 전혀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말 개인적인 사유로 사표를 낸 뒤 고려대 출강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유 본부장은 “그동안 업무 피로가 쌓였고 대학에 출강하면서 개인 시간도 갖고 싶다”고 했다.
산업부 안팎에선 유 본부장이 통상 분야를 이끌 ‘최적임자’라는 평이 많다. 20~30년간 통상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데다 ‘자동차 232조’ 등 현안도 잘 이해하고 있어서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직급상 차관급이지만 산업부는 물론 다른 부처 장관과 함께 국무회의에도 참석한다.
유 본부장은 울산 출신으로, 서울 정신여고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밴더빌트대 로스쿨을 마쳤다.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행정고시 35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1995년 통상산업부가 선발한 첫 번째 여성 통상 전문가다. 외교통상부 및 산업부에서 FTA정책과장, FTA서비스교섭과장, 통상정책국장 등을 지냈다. 작년 1월 통상교섭실장으로 승진했을 때 산업부 70년 역사에서 첫 ‘여성 1급’ 기록을 세웠다.통상본부 내에서도 기대가 높다. 업무 처리에 빈틈이 없으면서도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하는 스타일 덕분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김 전 본부장은 다소 독선적인 일 처리 때문에 장관은 물론 직원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며 “침체된 내부 분위기를 추스르는 것이 신임 본부장의 과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조재길/박재원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