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액션 열풍…웃음과 분노 잘 섞어 카타르시스 자극

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드라마 '열혈사제' 시청률 20…영화 '극한직업' 1500만명 관람
옛 탈춤 보듯 속 시원함 느껴…코믹액션 한류 가능성 보여
“잠깐, 위에서 뭐라고 말씀하시네. 하느님이 너 때리래.”

사제복을 입은 신부 해일(김남길 분)은 조폭을 향해 시원하게 주먹을 날린다. 지난달 15일 첫 방영된 SBS 드라마 ‘열혈사제’의 한 장면이다. ‘열혈사제’는 방영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지상파 드라마로선 보기 드물게 최고 시청률 20%를 기록했다.엉뚱한 전개는 웃음을 선사한다. 살인사건의 재수사를 원하던 해일은 바티칸에 있는 교황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교황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대통령이 재수사를 촉구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가짜 무당을 신나게 혼내는 등 톡톡 튀는 설정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웃기는 것만 아니다. 해일은 불의를 보면 불같이 화를 내고, 날 선 대사로 시청자를 ‘쿡’ 찌르기도 한다. 기도로 죄를 용서받으려 하면 “잘못한 사람한테 용서부터 구하고 오세요. 그래야 하느님 도장도 받아요”라고 날카롭게 꾸짖는다.

콘텐츠 흥행 공식이 바뀌고 있는 걸까.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에 이은 ‘열혈사제’ 열풍을 보며 든 생각이다. 두 작품은 모두 코믹액션극이다. 전통적으로 코믹액션극은 작은 성공은 가능해도 큰 흥행은 힘들다. 역대 영화 1위인 ‘명량’처럼 거대한 서사를 다룬 작품에 주로 시선이 집중된다. 두 작품은 어쩌면 새로운 흥행 공식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웃음’과 ‘분노’의 결합이 그것이다. 대중은 이제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양 극단에 존재하는 감정을 결합하고 끌어올리는 작품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특히 ‘극한직업’의 대성공은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관객수 1500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 국내 코미디 영화 1위, 전체 영화 2위를 차지했다. 특별히 감동적이지도 않고 교훈이랄 것도 없다. 잠입 수사를 위해 닭을 튀기며 벌어지는 일들과 불의에 맞서는 게 전부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보기 위해 극장에 몰렸다. 이 정도 흥행은 경쟁작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두 감정이 공존하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 ‘화병(火病)’을 떠올려보자. 화를 풀지 못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아픈 화병은 외국엔 없는 개념이다.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면 병이 날 정도로 솔직하고 표현하길 좋아하는 민족 고유의 성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분노만 표출하는 것은 아니다. 예부터 풍자와 해학이 담긴 ‘탈춤’ 등을 통해 다같이 웃고 떠들며 분노를 해소해왔다. 웃음과 분노는 상반되지만, 인간의 본능에 가장 가까운 감정들이다. 우리는 이를 결합해 긍정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을 체득해왔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감정을 표출하는 일은 줄어들고 있다. 유튜브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이도 늘어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일상에 지쳐 타인과 이야기하기조차 귀찮다. 코믹액션극을 보면 과거보다 더 속 시원하게 느껴지는 건 이런 잠재 욕구가 발현된 것은 아닐까.

대중의 감정선을 정교하게 더듬어가며 코믹액션극이 발전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스토리노믹스’의 기본은 살아 숨쉬는 ‘캐릭터’다. 두 작품만 보더라도 각 캐릭터 성격이 뚜렷하고, 촘촘하게 상호작용한다. ‘열혈사제’엔 변주된 히어로 해일뿐만 아니라 중심 캐릭터가 더 있다. 가위바위보나 숨 참기 등 하찮은 능력만 뛰어난 형사 구대영(김성균 분), 출세에 목말라하다 해일을 만나 변하는 검사 경선(이하늬 분) 등이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다. ‘극한직업’은 열심히 해도 실적이 나쁜 형사 5명에 개성 넘치는 악당들까지 잘 조합됐다. 특히 숨은 재능을 발휘해 맛있는 치킨을 만들어낸 마형사(진선규 분) 캐릭터에 많은 웃음이 터졌다.얼마 전 반가운 소식도 들렸다. ‘극한직업’이 북미에서 개봉한 한국어 영화 중 9위를 차지했다는 얘기다. 금액으로는 120만달러(약 13억4000만원)에 해당한다. 호주에선 한국어 영화 순위 4위에 올랐다. 문화적 장벽이 가장 큰 장르가 코미디다. 웃음 코드는 국가와 문화별로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장르의 한계를 조금씩 극복해가고 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글로벌 무대를 휩쓸고 있는 K팝처럼 언젠가 한국식 코믹액션이 해외 스크린을 점령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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